무허가 칫솔
2화. 충전기, 후드, 머그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충전기가 나타난 건 칫솔로부터 열흘 뒤였다.
콘센트에 꽂힌 낯선 흰색 충전기. "이건 또 뭐야?" "선배 폰이랑 같은 단자던데." 그 애는 그게 대답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우연이네요오—"
닷새 뒤엔 후드가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회색, 소매가 늘어난. "빨래하는 김에 같이 돌렸어요. 고마우면 라면 끓여 줘요."
다시 사흘 뒤, 싱크대 선반에 머그가 하나 늘었다. 이 나간 고양이 그림 머그.
나는 장부를 적는 사람처럼 그 목록을 셌다. 칫솔, 충전기, 후드, 머그. 한 사람의 생활이 물건 단위로, 순서대로, 남의 집에 이주하고 있었다. 이상한 건 그 속도였다. 한꺼번에가 아니라 하나씩. 들키지 않으려는 속도가 아니라 — 들켜도 되는지 하나씩 확인하는 속도.
버리라면 버릴 수 있었다. 치우라면 치울 수 있었다. 근데 민트색 칫솔 옆에 내 칫솔이 있는 세면대가, 어느새 원래 그랬던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 게 문제였다.
정기전 출품작 촬영은 막바지였다.
옥상에서 역광 컷을 잡던 날, 삼각대가 흔들렸다. 우리는 동시에 손을 뻗었고, 내 손이 그 애의 손등 위에 겹쳤다.
찰칵 — 셔터가 눌렸다. 의도 없는 컷이 찍혔다.
유지호가 굳어 있었다. 삼각대를 잡은 채로, 조각처럼. 귀가 새빨갰다.
"…야, 손."
"네." 대답만 하고 안 움직였다.
"손 빼야 사진을 찍지."
"아." 그 애가 손을 뺐다. 반 박자 늦게. 그리고 그날 찍은 나머지 사진은 절반이 흔들려 있었다.
침범은 그렇게 과감한 애가, 닿는 건 이렇게 서툴다. 물건은 겁 없이 밀고 들어오면서, 살아 있는 접촉 앞에서는 저쪽이 먼저 굳는다. 그 낙차가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낙차는 원래 마음에 남는 법이다.
동아리 회식에서 4학년 하나가 그 애를 툭 건드렸다.
"지호 너 1학년이지? 시안이한테 너무 들러붙는 거 아니냐? 몇 살 차이야, 대체."
늘 하던 능청이 나올 자리였다. 왜요오—, 하고 웃어넘길 자리.
유지호는 웃지 않았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웃음기가 전부 빠진 얼굴로 말했다.
"나이가 왜 나와요, 거기서."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그 애는 곧 평소의 얼굴로 돌아와 "농담이에요오—" 하고 분위기를 풀었지만, 나는 봤다. 풀리지 않은 눈을. 선을 그으려는 손길에만 정색하는 애라는 걸.
그 주 금요일, 폭우로 옥상 촬영이 취소됐다.
우리는 자취방에서 출품작을 골랐다. 빗소리, 모니터 불빛, 소파와 바닥 사이의 거리. 그 애는 바닥에 앉아 있었고, 흔들린 사진들을 넘기다가, 손등이 겹쳐 찍힌 그 컷에서 멈췄다.
"이거," 내가 말했다. "실수 컷이잖아. 지워."
"…이게 제일 잘 나왔는데."
"어디가."
침묵. 빗소리. 그리고 그 애가 고개를 들었는데, 어미가 늘어나 있지 않았다.
"선배. 지금은 장난 아니에요."
존댓말이었다. 장난 반말도, 늘어지는 어미도 아닌, 처음 듣는 또박또박한 존댓말.
"여기 있는 거, 편해서만은 아니에요."
말해 놓고, 그 애는 자기가 한 말에 자기가 놀란 얼굴을 하더니 — 소파 위의 이불을 끌어다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이불 밖으로 새빨간 귀만 남기고.
"…야."
"자요, 나." 이불 속에서 웅얼거렸다. "방금 거 못 들은 걸로 해도 되는데, 지우지는 마요."
월요일 동아리방에서, 총무 선배가 지나가듯 말했다.
"지호 걔 아직도 너네 집이야? 걔 기숙사 미배정 아니라던데."
"…뭐?"
"배정받았대. 3월에. 근데 일주일 만에 제 발로 나왔다더라." 총무는 대수롭지 않게 출석부를 넘겼다. "이상하지 않냐? 요즘 기숙사가 어딘데."
배정받고, 일주일 만에, 제 발로.
갈 데가 없다던 애의 문장이, 처음으로 다른 모양으로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