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담
홈

목숨빚은 검으로 갚지 않는다

4화. 친전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봉인은 쉽게 뜯어졌다. 비단 봉투치고는.

"열지 마시오."

그가 다시 말했다. 나는 이미 열고 있었다. 내 이름으로 온 것을 남이 열지 말라고 하는 법은, 강호에도 의원에도 없다.

종이는 한 장이었다. 붓글씨. 획이 굵고 여유가 있었다. 큰 세력의 주인이 쓰는 글씨란 이런 것인가 보다 했다. 나는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그가 옆에서 읽는 것이 보였다. 내 어깨 너머로. 세 걸음이 아니라 반 걸음에서. 여덟 달 동안 이 사람이 반 걸음까지 온 적은 없었다.

내용은 세 토막이었다.

첫째, 사례. 낙마한 젊은이는 회주의 조카이며, 다리를 살린 손에 만천회는 빚을 졌다. 둘째, 초빙. 만천회 본가에 의원 자리가 비어 있으니 오시라. 은자와 거처와 약재고를 갖추어 두겠다. 셋째 —

셋째는 한 줄이었다.

「그대 마당에 낯익은 검이 있다 들었소. 함께 오시면 옛정으로 대접하리다.」

나는 그 줄을 두 번 읽었다. 낯익은 검. 옛정.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그는 그 줄을 읽고 있었다. 눈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 읽은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한 줄에서 멈춘 사람의 눈이었다.

"…옛정이라 하오."

그가 말했다. 낮게.

"무슨 옛정이오."

"다섯 해 전의."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검집 원칙이었다. 이 사람은 하루에 한 번 이상 검집을 열지 않는다. 오늘은 그 한 번을 '옛정'이라는 두 글자에 쓴 모양이었다.

가지 않기로 했다.

결정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마을에 환자가 있다. 산 너머 마을까지 의원은 나 하나다. 은자와 거처와 약재고는 좋은 것이지만, 좋은 것을 좇아 자리를 비우면 그동안 아픈 사람은 누가 보나. 스승님이 살아 계셨다면 물어볼 것도 없는 일이라 하셨을 것이다.

"답장을 써야겠소."

"내가 쓰겠소."

그가 말했다. 나는 붓을 들다 말고 그를 봤다.

"그쪽이? 왜?"

"만천회 회주에게 보내는 글이오. 격식이 있소."

"격식을 아시오?"

"세가에서 자랐소."

그렇다. 이 사람은 세가의 소가주였다. 멸문하기 전까지는. 나는 붓을 내밀었다. 그는 먹을 갈았다. 검으로 장작을 패던 손이 먹을 가는 것은 처음 봤는데, 먹도 장작처럼 곱게 갈았다. 그리고 종이를 펴고, 붓을 들고, 첫 줄을 썼다.

「만천회 회주 좌하. 적의 진영에서 삼가 글을 올리오.」

"…잠깐."

"왜 그러시오."

"적의 진영이라니. 여기는 의원이오."

"회주에게는 적의 진영이오."

"회주에게 보내는 글에 그렇게 쓰면 어떻게 하오. 게다가 이건 내 답장이오. 내 이름으로 가는 거란 말이오."

그는 붓을 든 채로 한참 생각했다. 병법 문제를 받은 사람의 침묵. 흥정이라는 것은 병법에 없소, 하던 그 침묵.

"…격식이란 것은, 병법과 다른 모양이오."

나는 붓을 도로 뺏었다. 그가 쓴 첫 줄을 접어서 아궁이에 넣었다. 잘 타는 종이였다. 그리고 내 손으로 썼다. 사례에 감사드리오. 초빙은 사양하오. 이 마을에 환자가 있소. 그것이 전부였다. 낯익은 검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내 마당에 무슨 검이 있든 그것은 회주가 물을 것이 아니다.

답장은 사흘 뒤 만천회 사자가 받으러 온다고 했다. 봉투 뒷면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날 밤, 그는 지붕에 올라가지 않았다.

평상에 앉아 있었다. 검을 무릎에 올린 채로. 뽑지는 않고. 나는 약탕기 핑계로 마당에 나갔다. 핑계는 이제 핑계가 아니었다. 그냥 나가는 것이었다.

"지붕은요."

"오늘은 마당이오."

"왜요."

"초대장이 온 집은 지붕에서 지키는 것이 아니오. 마당에서 지키는 것이오."

무슨 병법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대신 평상 끝에 앉았다. 세 걸음보다 가까운 자리. 그 자리가 이제 내 자리처럼 되어 있었다.

"옛정이 뭐요."

물었다. 검집을 오늘 한 번 열었으니 대답이 안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

"회주는."

그가 말했다. 검 자루를 보면서.

"아버지의 의형제였소."

의형제. 다섯 해 전 나만 살았소, 의 다음 줄이었다. 서문세가를 멸문시킨 만천회의 회주가 아버지의 의형제. 나는 그 문장을 받아서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은원이 꼬인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그 사람이 —"

"묻지 마시오."

그가 말을 잘랐다. 그리고 덧붙였다. 늘 그렇듯 반 박자 늦게.

"…다치니까."

내가 다친다는 건지, 자기가 다친다는 건지 그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약탕기에 물을 붓고 앉아 있었다. 달이 밝았다. 그가 오늘 검집을 두 번 열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옛정, 그리고 의형제. 원칙을 어긴 것이 아니라, 원칙보다 큰 것이 온 것이었다.

사흘째 아침, 그가 헛간에서 나오며 말했다.

"초대는 내가 받겠소."

"…뭐라고요?"

"사자가 오면 내가 만나겠소. 의원은 안에 계시오."

나는 답장 봉투를 들고 있었다. 내 이름으로 쓴 내 답장. 그것을 만천회 사자에게 건네는 것은 내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검을 허리에 차고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사자를 만나겠다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았다. 다섯 해 만에 처음으로 만천회 사람 앞에 자기 얼굴을 내놓겠다는 뜻이었다.

"안 되오."

"…의원."

"내 답장이오. 내가 건네오. 그쪽은 헛간에 계시오."

그가 나를 봤다. 검집에서 아무것도 안 꺼낸 눈으로. 그런데 그 눈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을 어귀에서 말발굽 소리가 났다.

— 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