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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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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빚은 검으로 갚지 않는다

23화. 우물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해독약은 이레째에 됐다. 쉰 명분.

약재고 서랍 열두 개를 비웠다. 회주가 그것을 보고 아무 말도 안 했다. 강호 제일세가의 약재고를 의원이 비우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이 사람의 옛정이었다. 약은 봉지 쉰 개로 쌌다. 내 방식으로 접어서. 종이 접는 방식은 아무도 못 바꾼다. 봉지 안이 바뀌지 않는 한.

"안이 바뀌면요."

내가 회주에게 물었다. 봉지를 쌓으며.

"…본가 안에 셋째가 있다면 말이오?"

"약이 산 셋 너머까지 가는 동안, 손이 몇이나 거치오."

회주가 세었다. 넷. 회주의 사람 둘, 산 넘는 길의 역참 하나, 진지의 약 담당 하나.

"…의원이 직접 가시겠소?"

"의원은 걷소. 산 셋이면 엿새요. 약이 먼저 가야 하오."

나는 봉지를 하나 열었다. 그리고 안에 뭔가를 넣었다. 약재고 서랍 맨 아래에 있던 것. 색이 짙고 냄새가 없는 가루. 회주가 그것을 봤다.

"…그것은."

"표시요. 혀에 대면 아주 쓰오. 독이 아니오. 그런데 약에 뭔가 더해지면 이 쓴맛이 사라지오. 받는 사람이 혀에 대 보면 아오. 바뀌었는지."

"결이가 그걸 아오?"

"모르오. 그러니까 편지에 쓰겠소."

편지는 이번에도 한 줄이었다.

「혀에 대시오. 쓰면 내 것이오. 안 쓰면 안 드시오.」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하나 더 넣었다. 헝겊. 배 아픈 풀 절반. 골라낸 것.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이자 중에 잘못 온 것을 돌려보내는 셈. 장부의 셈법으로.

코믹한 일은 회주한테서 나왔다.

봉지 쉰 개를 쌓아 놓고 나는 회주에게 값을 말했다. 약재 값. 서랍 열두 개 치. 의원은 값이 있으면 값이다. 회주가 나를 봤다.

"…내 약재고에서 내 무사를 살릴 약을 지었는데 나한테 값을 받으시오?"

"의원이 지었소. 지은 값이오. 약재는 회주 것이니 약재 값은 빼고."

"그러면 얼마요."

나는 말했다. 엽전 닷 냥. 마을에서 받는 값이었다. 쉰 명분에 닷 냥.

회주가 한참 나를 봤다. 그리고 웃었다. 이번엔 길게. 다섯 해 만에 두 번째 웃음이 이 사람한테는 의원 덕이었다.

"…거꾸로 흥정이 여기서도 되는군."

"의원은 흥정을 안 하오."

"결이가 그랬지. 흥정은 병법에 없다고."

"그쪽은 병법서를 안 읽어서 그렇소. 예법 장도 안 읽었다잖소."

회주가 닷 냥을 줬다. 정확히. 그리고 서랍 열두 개를 다시 채우라고 사람을 보냈다. 나는 닷 냥을 받았다. 장부에 적었다. 진짜 장부에. 엽전 단위로. 여덟 달 만에 처음으로 엽전 항목이 생겼다.

산 셋 너머에서 전갈이 온 것은 약이 떠난 지 닷새 뒤였다.

회주가 나를 안뜰로 불렀다. 이번엔 얼굴이 상복이 아니었다. 그런데 좋은 얼굴도 아니었다. 어려운 얼굴이었다. 병법 문제를 받은 사람의 —

"약이 갔소. 쓴맛도 갔소. 누운 자들이 일어났소."

"…그쪽은요."

"서 있소. 그리고 —"

회주가 종이를 내밀었다. 산 셋 너머에서 온 것. 그의 글씨가 아니었다. 회주의 사람 글씨.

「흑연방 방주가 서문 소가주와 만나기를 청함. 단둘이. 산 셋 너머 계곡. 소가주는 응하겠다 함.」

나는 종이를 봤다. 단둘이. 흑연방 방주. 얼굴을 아는 사람이 하나뿐인 자들의 우두머리. 다섯 해 전 서문세가에 불을 지른 자. 그 자가 소가주와 단둘이 만나자 한다. 그리고 이 사람이 응하겠다 했다.

"…소가주는 죽었다면서요."

내가 말했다. 종이를 든 채로.

"뭐요?"

"본가 하인한테 그랬소. 소가주는 다섯 해 전에 죽었다고. 그런데 흑연방이 소가주와 만나자 하고, 이 사람이 응하겠다 하오. 죽은 사람이 왜 응하오."

회주가 나를 봤다. 그리고 아주 낮게.

"…죽은 사람은 잃을 게 없으니."

그날 밤 나는 편지를 썼다. 한 줄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길게.

「의원은 그런 걸 안 정하오. 그쪽 검이오. 검을 얼마나 늦출지는 그쪽이 정하시오. 정하지 않은 것도 정한 것이라 했으니.

그런데 하나만 정하겠소. 의원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다치지 마시오.

그게 전부요. 산 셋 너머 계곡에 가든 안 가든. 단둘이 만나든 쉰 명과 만나든. 다치지 마시오. 다치면 —」

나는 거기서 붓을 멈췄다. 이 사람이 말을 자르는 자리에서 나도 잘랐다. 그리고 잘린 자리에서 안 이었다. 이 사람은 잘린 자리에서 잇는데 나는 못 이었다. 다치면 뒤에 올 말을 내가 몰라서가 아니라, 알아서.

봉투에 넣었다. 회주의 사람이 새벽에 떠났다.

산 셋 너머로 가는 편지에, 장부 한 줄이 따라갔다. 내 장부에서 뜯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적은 것이었다. 편지 맨 아래에. 이 사람 이름 대신 넣는 것으로.

「— 이자요.」

의원이 약 대신 편지에 이자를 붙인 것은 처음이었다. 갚는 셈이 아니라 늘리는 셈으로.

— 24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