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빚은 검으로 갚지 않는다
19화. 앞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앞에서 걷는 사람은 길을 알아야 한다.
마당으로 돌아온 다음 날, 왕진이 있었다. 산 너머 마을. 그가 앞에 섰다. 표적이 바뀌었으니. 세 걸음 앞. 그런데 갈림길에서 그가 왼쪽으로 갔다. 왕진 길은 오른쪽이었다.
"오른쪽이오."
"…"
그가 돌아섰다. 오른쪽으로 갔다. 세 걸음 앞에서. 다음 갈림길에서 또 왼쪽으로 갔다. 왕진 길은 이번에도 오른쪽이었다. 여덟 달 동안 세 걸음 뒤에서 따라오기만 해서, 이 사람은 길을 몰랐다. 뒤에서는 앞사람이 가는 대로 가면 되니까.
"…앞은 병법에 없소?"
"앞은 있소. 길이 없소."
세 번째 갈림길부터 내가 방향을 말했다. 오른쪽. 왼쪽. 곧장. 그가 세 걸음 앞에서 그대로 갔다. 앞에서 걷는데 뒤에서 조종당하는 호위무사. 산 너머 마을 사람이 그것을 보고 "의원님 호위가 길을 모르나 보네"라고 했고, 그는 "…알아 가는 중이오"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은 그가 알았다. 한 번 간 길은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세 걸음 앞에서, 갈림길마다 오른쪽 왼쪽을 정확히. 나는 뒤에서 그 등을 봤다. 여덟 달 만에 처음으로 이 사람 등을 보며 걷는 길이었다. 반듯했다.
약장수는 만천회가 데려갔다. 회주의 무사 둘이 와서. 그리고 그 둘이 맞은편 집에 다시 들었다. 이번엔 감시가 아니라 호위라고 했다. 정중하게. 이마에 노란 자국이 다 빠진 그 무사가 말했다. "표적이 의원이시니, 저희가 있겠습니다."
창문에 불이 켜졌다. 이 마당을 보는 불. 그런데 이번엔 그가 지붕에 안 올라갔다. 헛간에도 안 들어갔다. 문 앞에 앉았다. 담벼락에 기대서. 검을 무릎에 올리고. 마당 안이 아니라 마당 밖에서, 마당을 등지고 길을 보는 자리.
"거기서 자오?"
"안 자오."
"밤새?"
"…앞이오."
앞에서 지키는 사람은 마당을 등진다. 나는 그것이 이상하게 서운했다. 지붕에서 지킬 때는 마을 입구를 보면서도 마당이 발밑에 있었다. 문 앞에서는 마당이 등 뒤다. 등 뒤는 안 보인다.
"…지붕이 낫소."
내가 말했다. 문 안에서. 담 너머로.
"지붕은 뒤요. 표적은 앞에서 오오."
"그래도 지붕이 낫소. 마당이 보이니까."
침묵. 병법 문제. 그리고 —
"…내일부터 지붕이오. 오늘은 앞이오."
회주의 서신은 사흘 뒤에 왔다. 붉은 봉투가 아니라 흰 봉투. 수신인은 그였다. 서문결 친전. 나는 봉투를 그에게 줬다. 그가 열었다. 내 앞에서. 열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읽는 데 오래 걸렸다. 나는 옆에서 안 읽었다. 그의 얼굴만 봤다. 얼굴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 그가 종이를 접었다. 그리고 말했다.
"청부한 자를 찾았소."
"…누구요."
"없소."
"없다니."
"청부가 없었소. 흑연방이 스스로 했소. 강호 제일이 되려고. 서문세가가 길에 있어서. 그게 다요."
나는 그 말을 받았다. 다섯 해 동안 이 사람이 찾던 원수의 얼굴이, 얼굴이 없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그냥 길에 있어서. 검이 아니라 셈으로 멸문당한 세가.
"…그래서요."
"흑연방 본거지를 회주가 찾았소. 산 셋 너머. 만천회가 간다고 하오. 그리고 —"
그가 종이를 봤다.
"— 나한테 함께 가자 하오. 서문세가의 검이 앞에 서야 한다고. 그래야 흑연방이 표적을 다시 나로 바꾼다고."
표적을 다시 나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알았다. 이 사람이 흑연방 앞에 서면 흑연방은 늦추는 검을 제일 먼저 벤다. 의원이 아니라. 이 사람이 떠나면 이 마당은 표적에서 벗어난다.
"…가오?"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검을 봤다. 무릎에 올린. 그리고 마당을 봤다. 평상. 시렁. 지붕. 헛간. 여덟 달.
"…빚을."
낮게.
"정산해야겠소."
갚기 전에는 못 간다던 사람이 정산이라는 말을 꺼냈다. 그것이 가겠다는 말인지, 가야 하는데 못 가겠다는 말인지, 그날 밤에는 몰랐다.
— 20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