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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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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빚은 검으로 갚지 않는다

14화. 두 장부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약장수는 마을 어귀 주막에 방을 얻었다. 등짐 하나, 방울 하나, 웃는 얼굴 하나. 장날도 아닌데 마당에 자리를 폈다. 감기약, 배앓이약, 고약. 마을 사람들이 몰렸다. 싸고, 웃고, 덤을 줬다. 의원보다 쌌다.

나는 갔다. 의원이 약장수 약을 보러 가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당연하다. 이 마을 사람들이 먹을 것이니까.

"의원님이시구먼요!" 약장수가 웃었다. "제 약이 의원님 약보다야 못하지만, 값은 싸니까 서로 좋지요."

감기약 한 봉지를 샀다. 배앓이약도. 엽전 두 닢. 정말 쌌다. 돌아오는 길에 봉지를 코에 댔다. 익숙한 냄새.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그 밑에 아주 조금.

"약장수요."

밤. 마당. 헛간에서 나온 그가 평상 옆에 섰다. 지붕이 아니라. 보름 만의 마당이 하루 만에 익숙해져 있었다.

"어젯밤 방울 소리 들었소."

"헛간 불이 꺼지던데."

"…방울 소리는 병법에 있소. 밤에 들어오는 방울은 좋은 것이 아니오."

나는 감기약 봉지를 그에게 보여 줬다. 냄새. 그가 코를 대지 않았다. 검객은 약 냄새를 모른다.

"밑에 뭔가 있소. 아주 조금. 이건 감기약에 안 들어가는 거요."

"…독이오?"

"모르오. 아직. 내일 달여 보면 알 거요."

그가 봉지를 봤다. 그리고 마을 어귀 쪽을 봤다. 주막. 검 자루에 손이 안 갔다. 검은 평상에 놓여 있었으니까. 어제 풀어 놓은 그대로.

"…내일 달이시오. 나는 —"

"가지 마시오."

그가 나를 봤다.

"미행하러 가는 거잖소. 약장수. 안 되오. 환자가 될 사람을 잡으러 가는 건 의원 마당에서 하는 일이 아니오."

"…환자가 될 사람이오?"

"약장수가 흑연방이면, 그쪽이 가면 그자는 환자가 되오. 칼등에 맞아서. 나는 그 환자를 또 살려야 하고. 그러면 이 마당은 흑연방 사람까지 살리는 마당이 되오."

그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병법 문제. 아니, 병법이 아니었다. 이 사람이 다섯 해 동안 안 풀어 본 문제였다. 원수가 될 사람을 환자로 보는 문제.

"…의원 마당은 그런 마당이오?"

"그런 마당이오. 여덟 달 전에 그쪽도 그렇게 들어왔소."

아침에 나는 약을 달였다. 약장수 약을. 탕기에 넣고, 끓이고, 색을 봤다. 냄새를 맡았다. 스승님이 가르쳐 준 방법으로. 색이 맑아야 할 자리에서 아주 조금 탁했다.

독이었다. 미량. 감기약 한 봉지로는 아무 일도 안 생긴다. 열 봉지면 몸이 나른해진다. 백 봉지면 —

"천천히 죽이는 독이오."

내가 말했다. 마당에서. 그에게. 그는 장작을 패고 있었다. 검으로. 곱게. 보름 만에 다시 보는 대패질 단면.

"마을 전체를요?"

"마을이 아니오. 마을은 핑계요. 누군가 한 사람을 천천히 죽이려면 마을 전체에 약을 풀어야 그 한 사람이 의심을 안 하오."

그가 검을 멈췄다.

"…그 한 사람이 누구요."

"모르오. 근데 이 마을에서 흑연방이 천천히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

나는 말을 잘랐다. 이 사람이 자르는 방식으로. 그리고 잘린 자리에서 이었다.

"— 검을 늦추는 자겠지요. 회주가 그랬잖소. 늦추는 검을 제일 먼저 벤다고."

그가 검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나를 봤다. 검집은 안 열렸다. 대신 그가 말했다. 짧게. 사실만.

"…나는 약장수 약을 안 먹소."

"압니다. 내 약만 먹잖소."

"그러면 그 독은 나한테 못 오오."

"그쪽한테 못 오면 어디로 가겠소."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얼굴이 — 여덟 달 전 폭우의 밤에 내 마당에 쓰러졌을 때처럼 하얘졌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알았다. 이 사람은 그 독이 어디로 가는지 나보다 먼저 계산한 것이다. 검을 늦추는 자한테 못 가면, 검을 늦추게 한 사람한테.

그날 밤, 나는 내 장부를 꺼냈다.

평상에서. 헛간에서 나온 그 앞에. 산에서 그가 보여 준 장부에 대한 답이었다. 나는 그것을 이레 동안 미뤘다. 회주가 오고, 흑연방이 오고, 약장수가 와서. 그런데 오늘 밤은 미룰 수가 없었다.

"내 장부요. 봅시다."

그가 받았다. 내 문법이 아니라 자기 문법으로 받았다. 봅시다는 보겠다는 뜻.

첫 장. 여덟 달 전. 밥값, 약값. 진짜 장부였다. 엽전 단위로. 석 달 치. 그런데 넉 달째부터 항목이 바뀌어 있었다.

「지붕. 마른 자국. 마을 입구.」 「장작. 대패질. — 아궁이에 넣기 아까움.」 「소금 세 배. 웃음.」 「행렬. 소매. 손등 차가움.」 「평상 끝.」 「토끼. 가시오.」 「이자요. 이슬.」

같은 장부였다. 그의 것과. 날짜와 한 줄. 받은 것의 기록. 나는 그것을 그가 산에서 장부를 보여 주기 전부터 쓰고 있었다. 넉 달째부터. 셈이 안 맞는다는 것을 알면서.

그가 마지막 장을 봤다. 오늘 날짜.

「약장수. 독. — 그쪽 얼굴이 하얘짐. 폭우의 밤 이후 처음.」

그가 장부를 덮었다. 나한테 돌려줬다. 그리고 검집이 열렸다. 오늘의 한 번.

"…셈이 같소."

"그렇소. 같소."

"둘 다 못 갚소."

"둘 다요."

그가 평상에 놓인 검을 봤다. 그리고 나를 봤다. 그리고 아주 낮게, 여덟 달 중 제일 낮게.

"…같은 장부를 쓰는 사람을, 흑연방이 알아봤소. 나보다 먼저."

받은 것을 적는 장부가 둘이면 그것은 빚이 아니라 다른 이름이다. 그 이름을 이 사람도 나도 안 불렀고, 흑연방이 먼저 불렀다. 표적이라는 이름으로.

마을 어귀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딸랑. 밤인데. 약장수가 움직이는 시각이 아닌데.

— 1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