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적으로 이상한 날들
4화. A4 한 장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낡고, 모서리가 닳고, 오래 만진 티가 나는 — 종이였다.
A4 한 장. 네 번 접혀 있었다. 접힌 자국이 하도 오래돼서 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서는 그것을 책상 위에 펴고 두 손으로 눌렀다. 종이가 다시 접히려고 해서.
"이거예요."
인쇄된 제목이 보였다. 『확률과 일상 — 조별 발표 2조』. 아래에 발표자 이름 네 개. 그중 하나가 신이서였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 수업이요."
나는 종이를 봤다. 기억이 없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분명히 내가 있었던 시간인데 내가 없는 것 같은.
그리고 여백에서, 내 글씨를 발견했다.
숫자는 맞음. 괜찮음.
볼펜. 급하게 쓴 글씨. 7년이 지났는데 내 글씨는 지금과 똑같았다. 숫자 하는 사람은 글씨가 안 변한다.
"기억 안 나시죠."
"…안 나요."
"그럴 거예요. 민규 씨한테는 그냥 그날이었으니까."
이서가 천천히 말했다. 이 사람의 문장은 원래 느린데, 오늘은 한 단어씩 확인하면서 놓는 것 같았다.
"발표 순서가 저였어요. 통계 파트. 그런데 제가 앞에 서면 목소리가 안 나와요. 그때는 지금보다 더 그랬어요. 원고를 들고 서 있는데, 첫 줄이 안 나왔어요. 30초쯤."
30초. 발표장에서 30초는 긴 시간이다.
"그때 옆 조에서 손을 든 사람이 있었어요. '교수님, 저희 조가 먼저 해도 될까요. 뒤에 일정이 있어서요.' 그래서 순서가 바뀌었어요. 저희 조는 다음 주로 밀렸고, 저는 그 주에 발표 파트를 바꿨어요."
옆 조. 뒤에 일정. 나는 그 문장을 들으면서 내 화법을 들었다. 7년 전에 나는 이미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수업 끝나고 원고를 자리에 두고 나갔는데, 돌아와 보니까 여백에 이게 있었어요."
숫자는 맞음. 괜찮음.
"…뒤에 일정, 있으셨어요?"
내가 물었다. 이서가 아주 작게 고개를 저었다.
"없었을 거예요. 아마."
아마.
나는 그 부사가 어디서 왔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7년 전 어떤 사람이 확인해 놓고 확인 안 한 척했고, 그것을 받은 사람이 7년 동안 그 화법을 썼다.
"그게 처음이었어요."
이서가 종이를 다시 접기 시작했다. 접힌 자국대로. 네 번.
"받은 우연이요. 그래서 — 우연으로 돌려드렸어요. 그게 제가 아는 유일한 문법이라서."
우연으로 돌려드렸어요. 4년 치 표본이 그 한 문장으로 정리됐다. 당직표도, USB도, 이어폰도, 택시도. 전부 7년 전 30초에 대한 답장이었던 것이다.
무서워야 하는 계산이었다. 7년이라는 숫자는 4년보다 크다. 그런데 이번에도 다른 값이 나왔다. 나는 그 값을 더 이상 소수점 아래로 내리지 않기로 했다.
"이서 씨."
"…네."
"물어봐요. 아까 그거. 우연 말고 그냥."
이서가 접은 종이를 서랍 두 번째 칸에 넣었다. 그리고 서랍을 닫지 않은 채로, 나를 봤다.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있으세요?"
첫 번째 정면 질문이 그것이었다. 7년 만에. 4년 동안 내 일정을 나보다 잘 알던 사람이, 내 일정을 나한테 물었다.
"있어요."
"…그럼."
이서가 다음 문장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 사람은 설계는 빠르고 질문은 느리다. 나는 기다렸다.
"어디로 갈지, 제가 정해도 돼요?"
나는 그 질문의 구조를 봤다. 제가 정해도 돼요 — 그건 설계하겠다는 뜻이었다. 동선을 짜고, 예약을 하고, 내가 편하도록 전부 치워 놓겠다는 뜻. 우연의 문법을 정면에서 다시 쓰겠다는 것.
"아니요."
이서의 손이 서랍 손잡이에서 멈췄다.
"같이 정해요."
그 사람이 처음으로, 대답을 못 했다.
— 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