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적으로 이상한 날들
28화. 설계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나는 세 줄을 읽었다. 소리 내서. 7층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옆 조 발표자. 목소리 작은 사람. 지난주 출석 부를 때도 두 번 불림. 발표 순서 먼저 하겠다고 하기. 뒤에 일정 있다고. 그 사람 발표 안 해도 되게.
이서는 무릎 위에 손을 놓고 듣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굳은 것과는 달랐다. 굳은 것은 받는 사람의 정지고, 이것은 듣는 사람의 정지였다.
"발표 전 주에 쓴 거예요. 5월 둘째 주."
"…"
"그날 손 든 거, 우연 아니었어요. 일주일 전에 계획한 거예요. 이서 씨가 처음 받은 우연이라고 한 거요. 그거 —"
"— 설계였네요."
이서가 말했다. 작게. 흐린 어미로. 그런데 놀라지 않았다. 이 사람은 원래 안 놀란다. 그런데 오늘의 안 놀람은 다른 것이었다. 알고 있던 사람의 안 놀람이 아니라, 알게 된 순간 전부 맞아 들어간 사람의 안 놀람이었다.
"한 줄 더 있어요."
나는 다른 색 볼펜의 한 줄을 읽었다.
발표 다음 주. 그 사람 이름 신이서. 통계 파트 잘함. 숫자 맞음.
이서의 손이 무릎에서 움직였다. 처음으로. 그리고 자기 서랍 두 번째 칸을 열었다. 네 번 접힌 종이를 꺼냈다. 7년 된 원고. 여백의 내 글씨.
숫자는 맞음. 괜찮음.
이서가 그것을 내 노트 옆에 놓았다. 두 개의 '숫자 맞음'. 하나는 남한테 보여 주려고 여백에 쓴 것, 하나는 나 보려고 노트에 쓴 것. 7년 전 같은 주에, 같은 볼펜은 아니고, 같은 사람이.
"…이름도 적으셨네요."
"적었어요. 그리고 잊어버렸어요."
"4년 전 입사 첫날에 두 번 물으셨어요. 제 이름."
"네. 세 번째로 들은 거였어요. 그때."
이서가 원고와 노트를 봤다. 오래.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소리 없이. 그런데 이번 웃음은 조용한 것이 아니라 —
"…그럼 나."
반말이었다.
"7년 동안, 설계를 우연으로 갚은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필요한 질문이 아니었다. 이 사람이 자기한테 하는 질문이었다.
이서는 "말 놨다"를 안 했다. "죄송해요"도 안 했다. 반말이 나온 채로 그냥 있었다. 회수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반말을 회수 안 한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회수할 생각을 못 한 것이다. 7년이 방금 뒤집혔으니까.
"이서 씨."
"…"
"화나요?"
"…아니."
이서가 노트를 봤다. 반말인 채로.
"화가 아니라 — 이상해. 7년 동안 내가 우연을 설계했는데, 그 시작이 설계였으면, 나는 우연을 한 게 아니라 설계를 돌려준 거잖아. 같은 걸로. 그러면 나는 —"
이서가 말을 멈췄다. 자기 말을 들은 것이다. 반말인 것을. 그런데 고치지 않았다. 대신 문장을 끝냈다.
"— 나는 처음부터 너랑 같은 문법이었네."
8시 55분. 7층 사람들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유진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 나와 이서와 노트와 원고를 봤다. 그리고 아무 말 안 하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듣는 척을 안 하는 방식으로.
나는 노트를 덮었다. 이서가 원고를 접었다. 네 번. 그리고 서랍 두 번째 칸에 넣지 않았다. 나한테 내밀었다.
"…이거, 민규 씨가 가지세요."
"이서 씨 거잖아요. 7년."
"7년 동안 제가 가졌으니까요. 이제 반은 민규 씨 거예요. 설계한 사람 거."
나는 원고를 받았다. 3초 안 걸렸다. 그리고 노트를 이서한테 내밀었다.
"그럼 이거 이서 씨 가져요. 이름 적힌 사람 거."
이서가 노트를 받았다. 두 손으로. 중요한 것을 받을 때. 굳지 않았다. 0초.
강지 팀장이 들어왔다. "어, 4층 분. 아침부터?" 나는 "우연히요" 했다. 이서가 옆에서 "…아니에요. 설계예요" 했다. 강지 팀장이 우리를 이상하게 봤다. 유진이 자기 자리에서 아주 작게 웃었다.
4층에 내려오니 성우 선배가 물었다.
"너 손에 그거 뭐야. 종이?"
"7년 된 거예요."
"뭔데."
"…숫자 맞는 거요."
나는 원고를 내 서랍 두 번째 칸에 넣었다. 내 서랍에는 두 번째 칸에 아무것도 없었다. 4년 동안. 이제 하나 있다. 숫자는 맞음. 괜찮음.
그리고 그날 오후, 오 팀장이 회의실에서 나를 불렀다. 서류를 들고. 이번엔 웃고 있었다.
"민규야. 7층에서 연락 왔는데."
— 29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