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반복되면
4화. 서른여섯 번째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그건—"
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찍은 거."
나는 필름과 그를 다시 번갈아 봤다. 못에 걸린 통은 손가락 두 마디만 했다. 라벨의 날짜는 10년 전 그 주. 내가 찍은 거라니.
"내가 카메라를 잡은 적이 있어?"
"한 번."
도하는 벽에서 필름을 내렸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나한테 내밀지는 않았다. 아직은 그의 것이었다.
"옥상에서. 라디오 잡던 날. 내가 너 찍는다고 카메라 들고 있으니까 네가 뺏었잖아. 관세라고."
기억이 났다. 뺏은 건 기억이 나는데, 찍은 건 기억이 안 났다. 열네 살은 그런 걸 기억하지 않는다. 그날 뭘 찍었는지보다 반찬이 뭐였는지가 더 오래 남는 나이다.
"서른여섯 컷짜리야. 서른다섯 장은 내가 찍었어. 그 주 내내. 옥상, 정류장, 네 자리."
"…그리고 한 장은."
"네가 찍은 나."
작업실은 좁고 길었다. 한쪽 벽이 전부 사진이었고, 다른 쪽 벽은 비어 있었다. 빈 벽 앞에 의자가 하나. 손님을 앉히는 자리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 의자에 앉았다. 도하는 서 있었다. 필름을 손에 쥔 채로.
"왜 안 뽑았어. 10년 동안."
"뽑으면 그 주가 끝나니까."
그는 그것을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설명하는 사람의 목소리로. 그런데 내용은 부드러운 것이 아니었다.
"현상하면 사진이 되잖아. 사진이 되면 그날은 지나간 날이 되고. 안 하면 — 아직 필름이야. 아직 그 주고."
"그 주에 계속 살았다는 얘기야?"
"응. 한쪽 발은."
나는 이 사람을 무서워했었다. 전시장에서, 열두 점의 풍경 앞에서. 지금 그 사람이 필름 한 통을 못 뽑고 10년을 서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무섭다는 감정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다른 것이 있었다. 목 안쪽이 아픈 것.
"뽑아."
내가 말했다.
"허락하면 하려고 했다며. 허락할게."
도하가 나를 봤다. 반 박자. 그리고 웃었는데, 온화한 쪽이 아니었다. 정류장에서 봤던 서툰 쪽이었다.
"…고마워."
그리고 그 웃음의 끝에서, 그가 조용히 덧붙였다.
"근데 서하야. 뽑고 나면, 그 주 대신 살 데가 있어야 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자리가 어디인지 알 것 같아서, 아는 채로 모르는 척했다.
현상소는 작업실에서 두 골목 거리였다.
도하는 직접 하지 않았다. "내가 하면 실수해." 10년 만에 손이 떨릴 것 같다는 뜻이었다. 나이 든 현상소 주인이 필름 통을 받아 들고 라벨을 봤다.
"오래됐네. 이거 제대로 안 나올 수도 있어요."
"알아요."
"그래도 해요?"
"네."
내가 대답했다. 도하보다 먼저. 그가 옆에서 나를 봤고, 나는 앞만 봤다.
"이틀 걸려요."
이틀 동안 나는 일을 했다. 회의를 하고 보고서를 고치고, 점심을 먹고, 야근을 했다. 그런데 하루에 몇 번씩 서른여섯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서른다섯 장의 나와 한 장의 그. 열네 살의 내가 뭘 보고 셔터를 눌렀을까.
이틀째 저녁, 문자가 왔다.
「나왔대. 같이 볼래, 아니면 나 먼저 볼까.」
나는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이 사람은 지금도 묻고 있었다. 먼저 볼지, 같이 볼지. 10년을 기다린 사람이 내 대답을 또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응. 안 열고 있을게.」
현상소 앞에서 만났다. 봉투는 이미 그의 손에 있었다. 봉투 입구가 접혀 있었다. 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작업실 가서 볼까."
"여기서."
내가 말했다. 골목의 가로등 아래. 그는 잠깐 망설이더니, 봉투를 나한테 넘겼다. 자기 손으로 여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 넘기는 쪽을 골랐다.
나는 봉투를 열었다.
첫 장이 옥상이었다.
— 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