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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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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반복되면

25화. 열두 통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떠나기 전날, 그가 상자를 줬다.

출장 때보다 큰 상자였다. 열어 보니 필름 카메라. 그때 그것. 그리고 필름이 열두 통.

"…열두 통?"

"한 달에 두 통. 6개월."

"이걸 다 찍으라고?"

"응. 나 없는 데. 네가 있는 데."

나는 필름을 하나 집었다. 서른여섯 컷. 열두 통이면 432장이었다. 이 사람은 10년 동안 나를 열일곱 자리에서 찍었는데, 나한테는 6개월에 432장을 맡기고 있었다.

"찍어서 보내 줄까?"

"아니."

그는 단호했다. 두 번째 단호함이었다.

"보내지 마. 갖고 와. 현상도 하지 말고. 필름째로."

"…왜."

"뽑으면 그 달이 끝나잖아."

나는 웃었다. 그 문법이 다시 나왔는데, 이번에는 무섭지 않았다. 그가 자기 문법을 자기가 웃으면서 쓰고 있었다.

"그거 고쳐야 되는 거 아니야?"

"고쳤어. 이건 다른 거야."

"뭐가 달라."

"그때는 끝나는 게 무서워서 안 뽑았고, 지금은 —" 그가 말을 골랐다. "지금은 같이 뽑으려고 안 뽑는 거야. 6개월 뒤에. 여기서. 둘이."

같은 문법이 다른 뜻이 되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봤다.

새벽 6시 고속버스였다.

그는 터미널에 오지 않았다. 내가 오지 말라고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배웅하는 뒷모습을 이 사람한테 남기고 싶지 않았다. 10년 전 책상이 치워진 날처럼 되지 않게.

대신 나는 새벽 5시에 작업실 골목을 지나갔다. 캐리어를 끌고. 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창 너머로 손을 들었다. 안에서 그가 손을 들었다. 처음 문자를 보내던 날과 똑같이.

그리고 그가 문을 열고 나왔다. 창 너머가 아니라 문 밖으로.

"…배웅 안 하기로 했잖아."

"배웅 아니야. 여기까지야. 골목 끝까지."

우리는 골목 끝까지 걸었다. 40미터. 캐리어 바퀴 소리만 났다. 골목 끝에서 그가 멈췄다. 큰길로는 나가지 않았다.

"여기가 내 자리야. 오늘은."

"…응."

"다녀와."

"응."

"어디로 가는지 알아. 언제 오는지도 알아. 그러니까 —"

그가 말을 잘랐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기가 이었다.

"그러니까 안 무서워. 거짓말이야. 무서워. 근데 옥상은 안 올라갈게."

버스 안에서 문자를 보냈다.

「출발.」

「응.」

「보고 싶어.」

답이 없었다. 1분. 2분. 나는 화면을 봤다. 이 사람이 이 세 글자를 받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폰을 보고, 내려놓고, 다시 보고.

5분 뒤에 왔다.

「나도.」

그리고 1분 뒤.

「그거 매일 보내 준다고 했지. …매일 답할게. 5분 안에.」

파견지 숙소는 작았다. 원룸. 창밖으로 물류센터 지붕이 보였다. 나는 캐리어를 풀고, 필름 열두 통을 책상 위에 한 줄로 세웠다.

첫 번째 통을 카메라에 넣었다. 창밖을 찍었다. 지붕. 그리고 방 안을 찍었다. 책상. 침대. 빈 의자.

찍고 나서 뷰파인더를 내리고 나는 웃었다. 빈 의자를 찍고 있었다. 왼쪽 자리를 비워 놓고.

밤 10시에 문자를 보냈다.

「집. 보고 싶어.」

4분 뒤.

「응. 나도. 오늘 손님 셋. 세 명 다 왼쪽 비웠어.」

— 26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