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반복되면
20화. 빈 벽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열두 점은 목요일에 떠났다.
포장 업체 사람 둘이 와서 한 장씩 종이에 싸고 상자에 넣었다. 도하는 옆에 서서 봤다. 도와주지 않았다. 못 도와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손을 잡지는 않았다. 대신 같은 방향을 봤다.
상자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벽이 비었다.
빈 벽은 생각보다 컸다.
10년 치 사진이 걸려 있던 자리에 못 자국만 열두 개. 그는 그 앞에 서서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손님 의자에 앉아서 그를 봤다. 그가 손님이 된 것 같았다. 자기 작업실에서.
"…뭐 하지."
그가 말했다.
"뭘."
"벽. 뭘 걸지."
"안 걸어도 돼."
"안 걸면 계속 비어."
"비어도 돼. 빈 벽 앞에서 손님 찍잖아. 원래 그 벽이야."
그는 못 자국을 봤다. 손가락으로 하나를 만졌다. 그리고 다른 벽을 봤다. 지도가 붙은 벽. 파란 핀.
"…저거 옮길까."
"뭘."
"지도. 이쪽으로."
"지도를 벽에 거는 사진작가가 어디 있어."
"여기."
나는 웃었다. 그가 웃지 않았다.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금요일에 재민이 왔다. 빈 벽을 보고 5초쯤 서 있었다.
"…팔았어요?"
"응."
"전부요?"
"열두 점."
재민은 나를 봤다. 그리고 도하를 봤다. 그리고 빈 벽을 다시 봤다.
"형, 저 3년 동안 형 사진 파는 거 한 번도 못 봤어요. 손님 프로필 말고. 형 작품은 안 판다고 했잖아요."
"팔았어."
"왜요."
"…사람이 와서."
재민은 한참 말이 없다가, 갑자기 웃었다.
"아, 저 그 뒷모습 액자 봤어요. 그건 남았네요."
"응."
"그거 제목표 비어 있잖아요. 3년 동안. 이제 이름 붙여요. 벽 비었으니까 그거라도 제대로 걸게."
재민이 가고 나서, 나는 구석의 작은 액자를 봤다.
교복 뒷모습. 열네 살. 흐릿한. 제목표가 비어 있는 유일한 사진. 그는 이걸 3년 동안 — 아니, 10년 동안 제목을 못 붙였다.
"이거 이름 뭐야."
"…없어."
"왜 없어."
"이름 붙이면 끝나니까."
또 그 문법이었다. 현상하면 끝나고, 이름 붙이면 끝나고, 팔면 끝나고. 나는 액자를 벽에서 뗐다. 그가 놀랐다.
"뭐 해."
"이름 붙이려고."
"…네가?"
"내 뒷모습이잖아. 내가 붙여야지."
나는 제목표를 봤다. 10년 동안 비어 있던 작은 종이. 그리고 그 위에 썼다. 그의 연필로.
『먼저 온 사람』
그가 그것을 읽었다. 두 번. 그리고 물었다.
"…누가."
"네가. 내가 이 골목에 오기 10년 전에 네가 먼저 왔잖아. 옥상에. 정류장에. 건너편에. 전부 네가 먼저 있었어. 나는 늦게 온 거고."
"…나는 네 뒷모습 찍은 건데."
"응. 뒷모습을 찍으려면 뒤에 있어야 되잖아. 먼저 와서 뒤에 있었던 거야."
그는 액자를 받아 들었다. 이름이 생긴 액자를. 그리고 빈 벽 한가운데 걸었다. 열두 개 못 자국 사이에, 작은 액자 하나.
"…벽이 안 비었네."
"응."
"작아서 더 안 비어 보여."
빈자리를 남기던 사람이 처음으로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나는 봤다. 아주 작은 것으로.
그날 밤 그가 물었다.
"서하야. 나 이제 뭘 찍어."
"뭐든."
"뭐든이 제일 어려워. 10년 동안 정해져 있었거든. 네 자리."
나는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손님 의자에 앉았다. 빈 벽 앞. 작은 액자 아래.
"나."
"…응?"
"나 찍어. 자리 말고. 앞모습으로. 가까이서."
그는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나를 봤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다정한 말의 끝처럼 말했다.
"…가까이서 찍은 적이 없어. 한 번도. 무서워서."
— 21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