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반복되면
17화. 이 밖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이 밖을 알려 줄게."
내가 말했다. 지도 앞에서. 다음 날 저녁이었다.
"…이 밖?"
"네가 모른다는 거. 자리 말고. 10년 동안 내가 뭐 했는지."
그는 의자를 가져왔다. 두 개. 빈 벽 앞에 나란히. 손님 자리가 아니라 그냥 자리였다. 우리는 앉았다. 지도를 마주 보고.
"들을게."
"1번. 초록 대문."
나는 그의 방식으로 시작했다.
"한 달 동안 밥 안 먹었대. 엄마가 그러더라. 나는 기억 안 나. 4월부터 먹었대. 친구가 생겨서. 이름이 수진이야. 지금도 연락해."
"…수진."
"응. 그 애가 내 첫 친구야. 새 동네에서. 네 편지를 못 받은 대신 생긴 사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질투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기록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것이 이상하게 편했다.
"3번. 대학."
"응."
"거기서 사람을 만났어."
그가 잠깐 멈췄다. 손이 무릎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2학년 때부터 4학년까지. 3년. 헤어진 건 졸업하고 반년 뒤."
"…."
"이름 말할까?"
그는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름은 안 알려 줘도 돼."
"왜."
"…알고 싶지 않은 게 처음이야."
그는 그것을 아주 조용히 말했다. 화가 아니었다. 온도가 내려간 것도 아니었다. 그냥 — 처음 겪는 것을 처음이라고 말하는 목소리였다.
"10년 동안 너에 관한 건 뭐든 알고 싶었어. 자리든, 계정이든, 소문이든. 근데 이건 — 이건 안 알아도 될 것 같아. 아니, 몰라야 될 것 같아."
"왜."
"알면, 그 사람 자리를 찍으러 갈까 봐."
나는 웃었다. 웃으면 안 되는 데서 웃었다. 그런데 그도 웃었다. 자기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지 아는 사람의 웃음이었다.
"6번. 첫 직장."
"응."
"거기서 사고를 쳤어. 보고서 하나 잘못 올려서 팀 전체가 일주일을 다시 했어. 나는 그때 그만두고 싶었어."
"…그만뒀어?"
"아니. 1년 더 있다가 옮겼어. 지금 회사로. 그게 10번."
"소문으로 들은 거."
"응. 소문에는 사고 얘기 없었지?"
"없었어. 이직했다고만."
"그렇지. 소문은 자리만 알아. 사고는 안에 있었으니까."
그는 지도의 6번 핀을 봤다. 첫 직장 앞 횡단보도. 그 사진 속 횡단보도를 내가 얼마나 무거운 얼굴로 건넜는지, 그는 몰랐다. 멀리서 찍었으니까. 얼굴은 안 보이니까.
"…미안."
"뭐가."
"자리만 찍어서. 안에 있는 건 하나도 몰라서."
"그건 네가 몰라야 되는 거였어. 그때는. 너 편지 답 못 받은 사람이었잖아."
한 시간쯤 얘기했다. 열일곱 개의 핀 밖에 있던 것들. 수진, 3년, 사고, 이직, 야근, 시럽 없는 라떼를 마시기 시작한 이유(위가 안 좋아져서). 그는 한 번도 끼어들지 않았다. 한 번도 메모하지 않았다. 카메라도 없었다. 그냥 들었다.
다 끝나고 그가 말했다.
"…지도가 두꺼워졌어."
"두꺼워?"
"응. 핀은 그대론데, 뒤에 뭐가 생겼어."
나는 지도를 봤다. 열일곱 개의 핀. 그 뒤에 이제 10년이 있었다.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
"이제 안에 있는 것도 알잖아. 이제 —"
그가 말을 골랐다. 그리고 그 다정한 정리의 끝에서, 아주 작게 덧붙였다.
"…이제 자리를 안 찍어도 될까. 그게 무서워. 안 찍으면 뭘 해야 되는지 몰라서."
— 18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