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반복되면
16화. 지도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지도는 작업실 빈 벽에 붙었다.
서울 전도와 전국 지도. 그 위에 핀이 열일곱 개. 그는 그것을 토요일 오전에 혼자 붙여 놓고, 나를 불렀다.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지도 옆에 서 있었다. 손님을 맞는 자리에서, 손님이 아니라 심사관을 기다리는 얼굴로.
"전부야."
"…열일곱 개."
"응. 내가 아는 네 자리. 10년 치."
그는 핀을 하나씩 짚었다. 순서대로.
"1번. 옥상. 정류장. 학교. 이건 같이 있던 데니까 아는 거고."
"응."
"2번. 초록 대문 골목."
그는 잠깐 멈췄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버스 타고 가다가 창밖으로 너를 봤어. 초록 대문 앞에서. 진짜 우연이었어. 그 버스 원래 안 타는 건데, 그날 지각해서 탔어."
"…따라 내렸어?"
"아니. 못 내렸어. 손이 안 움직여서. 종점까지 갔어."
그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서툰 쪽으로.
"그다음 주에 다시 갔어. 그 골목만 찍고 왔어. 초록 대문은 안 두드렸어. 편지 답이 없는 집이니까."
3번, 4번, 5번. 대학 도시의 정류장, 학교 앞 카페, 도서관 앞. 전부 내 공개 계정의 사진들이었다. 그는 그 자리들을 한 번씩 가서 건너편에서 찍었다. 스물두 살의 나는 그것을 몰랐다.
6번부터 9번까지는 서울이었다. 첫 직장 앞 횡단보도. 그때 살던 동네의 편의점. 그는 그것도 계정에서 알았다.
"10번. 지금 회사 앞."
"…이건 계정에 안 올렸는데."
"옛 동네 소문. 네 어머니가 옆집 아주머니한테 말씀하셨대. 딸이 이직했다고. 그 회사 이름을. 옆집 아주머니가 우리 엄마한테, 우리 엄마가 나한테."
"…그게 카페에서 말한 '동네가 좁잖아'였어?"
"응."
11번부터 17번까지는 회사 앞 골목의 카페, 편의점, 정류장이었다. 전부 반경 300미터 안. 작업실을 낸 뒤에 알게 된 자리들.
"작업실 자리는 어떻게 골랐어."
"회사 앞이니까."
"…그건 우연이 아니잖아."
"응. 그건 우연이 아니야."
그는 부인하지 않았다. 한 번도 부인한 적이 없는 사람답게.
열일곱 개를 다 짚고 나서 그는 물러섰다. 지도 앞에서 두 걸음. 그리고 나한테 자리를 내줬다.
"이게 다야. 이 밖은 몰라."
"…이 밖?"
"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누굴 만났는지, 왜 이직했는지, 대학에서 뭘 배웠는지. 아무것도 몰라. 자리만 알아. 자리는 밖에서 보이니까."
나는 지도를 봤다. 핀 열일곱 개. 무서워야 하는 것이 맞았다. 이 사람은 10년 동안 내 자리를 열일곱 개 알아냈다. 그런데 열일곱 개 전부, 그는 건너편에 서 있었다. 한 번도 건너오지 않았다. 초록 대문을 두드리지 않았고, 정류장 벤치에 앉지 않았고, 카페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도 위에 그의 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네 핀은 어디 있어."
"…응?"
"네가 있던 자리. 옥상 말고. 10년 동안 너는 어디 있었는데."
그는 지도를 봤다. 오래. 그리고 대답했다.
"…건너편."
나는 지도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이 사람의 10년은 지도로 그리면 이렇게 됐다. 열일곱 개의 자리와, 그 자리마다 건너편에 서 있던 한 사람. 핀이 없는 사람. 열일곱 번 안 건너온 사람.
무서움은 있었다. 3할쯤. 나머지는 다른 것이었다. 이 지도는 감시의 지도가 아니었다. 못 건너온 사람의 지도였다.
"도망 안 가."
내가 말했다.
"…응?"
"보고 나서 도망치면 어디로 가는지 알려 달라며. 안 가. 알려 줄 데가 없어."
그는 나를 봤다. 그리고 다정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다정함의 끝에서, 온도가 내려갔다.
"…안 가는 것도 알려 줘. 그것도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르겠어서."
— 17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