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담
홈

3시에 없던 회의가 생겼어

8화. 숨기는 거 나 못 해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말하자."

다음 날 옥상 벤치. 김밥 대신 하봄은 손에 아무것도 안 들고 있었다. 회의 주재자 얼굴에 결재 도장까지 찍힌 표정.

"게시판에?"

"게시판은 아니고. 그냥 물어보면 대답하자. 사귀냐고 하면 사귄다고."

"…규칙 세운 지 열흘 됐는데."

"내가 세웠으니까 내가 없앨 수 있어."

나는 김밥을 씹었다. 하봄은 김밥이 없어서 씹을 게 없었다. 그래서 하봄이 먼저 말했다.

"나 정면이 내 방식이야. 2년 동안 그랬고. 숨기는 거 해 보니까 이거 나 아니더라. 자료 떨어뜨리고 눈 피하고. 그거 하봄이 아니야."

"알아."

"그럼 말하자."

"…나는."

여기서 내가 말을 멈춘 것이 첫 번째 갈등의 시작이었다. 사귄 지 열흘 만의.

"나는 아직 부끄러운 쪽이야."

하봄이 나를 봤다.

"백한 번째까지 했잖아."

"그건 너한테 한 거고. 회사 전체한테는 아직 한 번도 안 했어. 회식에서 '아직'은 했는데, 그건 네 단어 뒤에 숨은 거였고."

"…"

"네가 정면인 거 알아. 좋아. 근데 나는 2년 동안 수비만 한 사람이야. 회사 전체가 보는 앞에서 정면은 — 아직 못 해."

하봄이 오래 나를 봤다. 화난 얼굴은 아니었다. 하봄은 화를 오래 안 낸다. 대신 계산하는 얼굴이었다. 승부욕이 있는 사람이 이길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의 얼굴.

"…그럼 내가 지는 거네."

"뭐가."

"숨기는 거 못 하는 내가 숨겨야 하는 거잖아. 네가 준비될 때까지."

"…그렇게 되나."

"돼."

하봄이 일어났다. 벤치에서. 그리고 나를 내려다봤다.

"알았어. 숨길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거."

"…미안."

"미안하면 빨리 준비돼. 나 못 참는 사람이야."

그날 오후 하봄의 숨김이 시작됐다. 그것은 2년 동안 내가 본 하봄 중에 제일 이상한 하봄이었다.

회의에서 내 의견이 까였다. 2년 동안 그 순간 제일 먼저 받아치던 사람이 하봄이었다. 오늘 하봄은 받아치지 않았다. 대신 자료를 넘겼다. 아주 크게. 종이 넘기는 소리가 회의실에서 제일 컸다.

"…하봄 씨, 뭐 할 말 있어요?"

노 팀장님이 물었다.

"아니요. 없습니다. 태오 씨 의견은 태오 씨가 알아서 하실 거예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2년 동안 이런 문장은 없었다. 노 팀장님이 나를 보고, 하봄을 보고, 자료를 봤다.

"…하봄 씨, 어디 아파요?"

퇴근길 15분.

"나 오늘 잘했지."

하봄이 물었다. 진심으로 칭찬을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회의에서?"

"응. 안 받아쳤잖아. 숨겼잖아."

"…노 팀장님이 너 아프냐고 물었어."

"그건 팀장님이 눈치가 없는 거고."

"회사에서 너만 몰라."

하봄이 발을 멈췄다. 그 문장이 자기한테 돌아온 것이 처음이라는 얼굴이었다.

"…나 그렇게 티 나?"

"2년 동안 회의에서 내 편 안 든 적이 없는데, 오늘 처음으로 안 들었어. 그게 안 티 나면 이상하지."

"…"

"너는 숨길수록 시끄러운 사람이야."

하봄이 나를 봤다. 그리고 웃었다. 분한 웃음이었는데, 분한 것 안에 다른 게 있었다.

"…12번."

"뭐?"

"지금 그거. 너는 숨길수록 시끄러운 사람이야, 그거. 12번째야. 나도 세고 있어."

내가 세는 걸 하봄도 세고 있었다. 회계 담당이 둘인 관계는 이렇게 된다.

"세지 마."

"세는 건 내 거라며. 그거 내가 훔칠게."

— 9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