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지의 방은 하나였다
8화. 우산은 두 개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6시 정각에 비가 왔다. 예보대로. 소나기였다. 회사 정문 앞 처마 밑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나는 그 틈에 서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선배님."
옆에 한여름이 서 있었다. 우산 두 개를 들고. 하나는 자기 것 — 검은색, 반듯하게 접힌 — 이고, 하나는 내 쪽으로 내밀어져 있었다. 투명한 편의점 우산. 새것. 비닐도 안 뜯은.
"…이거 언제 샀어."
"점심때요. 예보 보고요."
점심때. 그러니까 저 애는 12시에 비 예보를 보고, 내 우산이 캐리어에 있다는 걸 계산하고, 편의점에서 우산을 하나 더 샀다. 그리고 6시까지 책상 아래 세워 두고, 6시 정각에 내 옆에 와서 통보했다. 물음표 아니고 마침표.
"같이 쓰면 되잖아. 하나로."
"회사 앞입니다."
세 글자를 더 붙이지 않아도 알았다. 회사 앞은 회사다. 회사에서는 선배님이다. 선배와 후배는 우산을 같이 쓰지 않는다. 저 애의 규칙집 어딘가에 그렇게 적혀 있을 것이다.
우산을 두 개 펴고,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우산 두 개의 폭만큼 떨어져서. 빗소리가 두 개의 천 위에서 따로 났다. 300미터 지점의 편의점을 지났다. 벤치는 젖어 있었다. 저 애는 그 벤치를 반 박자 봤고, 지나쳤다.
비는 20분 만에 그쳤다.
지하철역 입구 앞에서였다. 한여름이 우산을 접었다. 나도 접었다. 젖은 공기가 훅 올라왔다. 비 그친 직후의 그 냄새 — 아스팔트와 흙과 물이 섞인.
"선배님."
"응."
"옥상, 가 보셨습니까. 회사요."
"…옥상? 거기 잠겨 있잖아."
"안 잠겨 있습니다. 경비 아저씨가 화분 때문에 열어 둡니다. 확인했습니다."
저 애는 그 말을 하고 회사 쪽으로 돌아섰다. 지하철역을 등지고. 나는 3초쯤 서 있다가 따라갔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물으면 저 애가 회사 안 문법으로 돌아갈 것 같아서.
옥상은 젖어 있었다.
비 그친 직후의 옥상. 화분이 열 개쯤, 물받이에 물이 고여 있고, 난간 너머로 저녁 도시가 젖은 채로 빛났다. 한여름은 난간까지 걸어가서 섰다. 나는 옆에 섰다. 우산 두 개의 폭이 아니라, 우산 하나 폭쯤.
"여기가."
저 애가 말했다. 앞을 본 채로.
"회사 안입니까, 밖입니까."
"…네가 정하는 거 아니야? 규칙."
"규칙에 없습니다. 옥상은."
그 말을 하고 나서, 한여름의 문장이 길어졌다.
"비 그친 직후에는 공기가 다릅니다. 습도가 높고, 소리가 멀리 안 갑니다. 그래서 말이 다르게 들립니다. 출장 호텔 밤이랑 비슷합니다. 어둡지는 않은데 비슷합니다. 왜 비슷한지는 아직 정리 중입니다."
다섯 문장. 나는 세지 않으려고 했는데 세어졌다. 조건이 하나 더 추가됐다. 기획 얘기, 어둠, 그리고 비 그친 직후의 젖은 공기.
"한여름. 너 지금 문장 길다."
"…압니다."
"안다고?"
"오늘부터요."
저 애가 처음으로 자기 문장 길이를 안다고 했다. 본인은 모른다는 게 정본이었던 시그니처에 처음으로 금이 간 밤 — 그게 이 옥상의 진짜 특이사항이었다. 본인은 모른다는 게 저 애의 유일한 시그니처였는데.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생각하느라 난간을 꽉 잡았다.
"선배님 우산이요."
한여름이 화제를 바꿨다. 아니, 바꾼 게 아니라 원래 하려던 말로 돌아온 것 같았다.
"캐리어에 있는 거. 3년 된 겁니다. 살이 하나 휘었습니다. 출장 가는 기차에서 봤습니다."
"…그것까지 봤어?"
"봤습니다. 그래서 오늘 산 겁니다. 편의점 우산은 임시고요. 바꾸시죠. 물음표 아니고 마침표입니다."
3년 된 우산의 휜 살 하나. 기차에서. 그러니까 저 애는 출장 첫날 아침, 3번 승강장에서 나를 기다리며, 커피를 받으며, 세 번 침몰하는 내 말을 들으며, 내 우산의 살이 휜 것까지 보고 있었다. 관찰자. 말은 없는데 다 보고 있는 애.
"바꿀게."
"네."
"근데 왜 네가 신경 써."
한여름은 3초 침묵했다. 젖은 공기 속에서. 그리고 한 문장.
"…계산에 들어가 있어서요."
우산이 계산에 들어가 있다. 사탕은 계산 밖인데. 나는 그 분류 기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탕은 저 애가 주는 것이고, 우산은 내 것이다. 내 것들이 저 애의 계산에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휜 살까지.
옥상 문이 삐걱 열렸다.
우리는 동시에 돌아봤다. 문 앞에 팀장님이 서 있었다. 담배를 든 채로. 옥상은 원래 팀장님의 흡연 구역이었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팀장님이 우리를 봤다. 우산 하나 폭의 거리를 봤다. 그리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둘이 뭐야?"
— 9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