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지의 방은 하나였다
5화. 특이사항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있다고? 뭐가."
팀장님이 커피를 든 채로 내 책상 앞에 멈췄다. 사무실 전체가 그 한 마디에 반 박자 조용해졌다. 세 자리 건너 키보드 소리가 멎은 것도 들렸다.
나는 보고서를 뒤집지 않았다. 뒤집으면 뭔가를 숨기는 게 된다. 대신 특이사항 란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숙박 착오 기록입니다. 총무팀 예약이 더블룸 하나로 잡혀서 이불 여분을 받았고, 그 내역을 남겨 둔 겁니다. 다음 출장 때 같은 일 없게."
거짓말은 없었다. 704호도, 이불 여분 2도, 전부 사실이다. 계산 미완만 설명하지 않았을 뿐이다. 팀장님은 서류를 힐끗 보고, "아 그 예약 사고? 총무팀 내가 한소리 했어. 고생했다"고 하고 지나갔다. 커피 냄새가 지나간 자리에 키보드 소리가 다시 돌아왔다. 반 박자 느린 속도로.
나는 검토자 의견 칸에 볼펜을 댔다. 뭐라고 쓰나. '확인함'? '검토 완료'? 저 애가 열한 글자로 던진 걸 두 글자로 받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 칸에 어젯밤 열차에서 웃은 이유를 쓸 수도 없었다. 회사 서류다.
결국 이렇게 썼다.
「검토자 의견: 계산 완료 시 재보고 요망.」
보고서는 스캐너로 넘겼다. 원본은 내 서랍에. 이 서류는 팀장님한테 갈 게 아니라 저 애한테 가야 하는 거였으니까.
회사에서의 한여름은, 출장 때보다 더 짧았다.
원래도 단답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비교 대상이 생겨 버렸다. 기차에서 세 문장을 연달아 말하던 애, 어둠 속에서 40퍼센트를 계산하던 애, 서울역에서 여덟 정거장을 돌아간 애. 그 애들에 비하면 사무실의 한여름은 문장이 한 뼘이 아니라 반 뼘이었다.
"한여름, 이 도표 원본 파일 어디 있어?"
"공유 폴더요."
"어느 폴더."
"3번이요."
끝. 출장 전이었으면 그냥 저 애가 원래 저런 줄 알았을 거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저건 원래가 아니다. 저건 회사다. 긴장되거나 설레는 상황일수록 대사가 짧아지는 애가, 회사라는 장소 전체를 그 상황으로 분류해 버린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 생각하다가, 나는 도표 파일을 3번 폴더에서 두 번이나 놓쳤다.
점심은 우연이었다. 우연이라고 해 두자.
팀 사람들이 먼저 나갔고, 나는 보고서 마무리를 하느라 늦었고, 한여름은 3번 폴더 정리를 하느라 늦었다. 12시 20분, 사무실에 둘만 남았다. 저 애가 일어나서 재킷을 집었고, 나도 일어났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란히 섰다.
"점심 뭐 먹을 거야."
"편의점이요."
"같이 가."
"…네."
회사 정문을 나섰다. 횡단보도를 건넜다. 편의점까지는 300미터쯤이다. 그 300미터를 걷는 동안 나는 실험을 하나 하기로 했다. 회사 밖으로 나오면 저 애의 문장이 길어지는지.
"보고서 특이사항 란, 팀장님한테는 숙박 착오라고 했어."
"네."
"검토자 의견은 내 서랍에 있어. 스캔본엔 없어."
"…네."
100미터. 아직 짧다.
"계산 완료 시 재보고 요망, 이라고 썼어."
한여름이 걸음을 멈췄다. 200미터 지점, 편의점 간판이 보이는 자리에서. 나도 멈췄다. 저 애는 앞을 본 채로, 반 박자 늦게, 그러나 문장을 이어서 말했다.
"재보고는 계산이 끝나야 합니다. 계산은 변수가 계속 추가돼서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어제는 여덟 정거장이 추가됐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검토자 의견이 추가됐습니다. 이런 식이면 완료 시점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네 문장이었다.
나는 300미터 실험의 결과를 얻었다. 회사 밖 200미터부터다. 저 애는 자기 문장이 방금 네 개였다는 걸 모르는 얼굴로, 편의점 문을 밀고 들어갔다.
삼각김밥과 컵라면. 편의점 앞 벤치. 출장에서 돌아온 지 이틀째의 햇빛.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먹었다. 한여름은 참치마요를 반 박자 늦게 골랐고, "잘 먹겠습니다"를 했고, 정확히 다 먹었다. 나는 옆에서 그 정확함을 보다가 뭔가 말하려다 말았다. 300미터 밖의 저 애한테 뭘 물어봐도 될 것 같은데, 물어보면 이 벤치가 200미터 안쪽으로 이동할 것 같아서.
한여름이 재킷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레몬 사탕이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노란 봉지. 한 알을 까서 자기 입에 넣고, 봉지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앞을 본 채로 말했다.
"선배님. 레몬 사탕 드실래요. 물음표 아니고 마침표입니다."
권유가 아니라 통보였다. 나는 한 알을 받았다. 시었다. 지나치게. 저 애는 표정 하나 안 바뀌고 그 신 걸 빨고 있었다.
"…이거 언제 샀어."
"어제요. 사당역에서요."
사당역. 여덟 정거장을 돌아간 곳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기 전에, 저 애는 편의점에 들러 레몬 사탕을 샀다. 오늘 이 벤치에서 나한테 통보하려고. 그 계산이 어제 밤에 이미 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계산 미완이라며."
"사탕은 계산 밖입니다."
오후 4시, 팀장님이 회의실에서 우리 둘을 불렀다.
"다음 주 경쟁 PT. 지역 매장 리뉴얼 전국 확장 건. 큰 거야. 서준 씨가 기획 잡고, 한여름 씨가 데이터 붙여. 둘이 한 조."
"……저희 둘이요?"
"출장 때 손발 잘 맞았다며? 점장님이 전화로 칭찬을 얼마나 하던지. 두 배 붐벼 보이게 해 준다고 했다며."
한여름은 3초 침묵했다.
"…그건 한여름 씨가 한 겁니다."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둘이 하라고. 다음 주 목요일 PT. 야근 각오해."
회의실을 나오면서 나는 저 애의 옆얼굴을 봤다. 무표정. 반듯한 등. 그런데 재킷 주머니에서 노란 봉지가 반쯤 삐져나와 있었다. 사탕이 계산 밖이면, 야근은 어느 쪽인가.
저 애가 먼저 말했다. 사무실 안, 200미터 안쪽에서, 딱 한 문장.
"야근은, 어둡습니다."
— 6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