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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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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지의 방은 하나였다

22화. 다음 줄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볼펜은 40분 동안 빈 줄 위에 있었다.

저 애는 30분이라고 했다. 나는 10분을 더 썼다. 결론부터 쓰는 사람이 결론을 못 쓰는 40분. 서른 개의 문장이 아니었다. 1800개 중 남은 하나였다. 그 하나를 이 손바닥만 한 종이 위에 놓으면, 저 애의 2년 치 계산이 끝난다. 끝나면 저 애는 발령을 결정한다. 6층에서 8층으로. 순서가 그렇다고 했다.

나는 썼다. 결론부터.

「결론: 가. 층은 상관없어. 나머지 10은 내 거 맞고, 그건 네가 8층에 있어도 6층에 있어도 100이야. — 검토자.」

감정은 안 적었다. 그런데 100이라는 숫자가 저 애의 사전에서 무슨 뜻인지 아는 채로 적었으니, 그건 저 애 방식의 감정이었다.

세 문장 반. 저 애 문법으로는 길고 내 문법으로는 짧았다.

수첩을 덮었다.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잠은 늦게 왔다.

회사 밖 10미터. 목요일 저녁.

저 애가 경계선 위에 있었다. 나는 경계선을 넘어서 수첩을 내밀었다. 저 애가 받았다. 그 자리에서 마지막 장을 폈다. 가로등 아래서. 나는 저 애의 얼굴을 봤다. 등이 아니라 얼굴. 계산이 안 된다던 그 얼굴.

읽는 데 3초가 걸렸다. 세 문장 반이니까.

저 애의 얼굴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입꼬리가 아니었다. 눈이었다. 반 박자 흔들리고, 한 박자 멈추고. 두 달 동안 세 번째로 본 흔들림이었다. 첫 번째는 조식 63점, 두 번째는 서울역 갈림길. 세 번째는 지금.

그리고 저 애는 수첩을 덮었다. 가방에 넣었다. 서랍이 아니라 가방. 결재 서류를 읽는 얼굴로 돌아와서, 정확한 한 마디로.

"…검토하겠습니다."

"또?"

"네. 규정입니다. 결재 서류는 검토 후 수리합니다."

저 애는 지하철역 쪽으로 걸었다. 나는 옆에서 걸었다. 우산 반 폭. 100이라고 적었는데 검토하겠다는 대답이 왔다. 온도차 원칙. 긴장이 최대일수록 건조해지는 애. 그러니까 지금 저 애의 긴장은 —

지하철역 입구 열 걸음 전에서 저 애가 멈췄다.

돌아서지 않았다. 앞을 본 채로. 반 박자 빠르게.

"발령, 수락하겠습니다."

"…응."

"검토 끝났습니다. 방금요."

"수첩은?"

"수첩도요. 수리합니다."

수리. 저 애 문법으로 그건 승인이다. 나는 그 두 글자를 받아서 어디 둬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저 애가 한 마디 더 했다. 돌아서면서. 이번엔 나를 보면서.

"그런데 재보고는 아닙니다. 100이라고 쓰신 건 선배님 계산이고, 제 계산은 아직 90입니다. 나머지 10은 제가 받아야 100입니다. 받는 건 —"

"받는 건?"

"…장소가 있습니다. 계산 시작한 곳 말고, 계산이 바뀐 곳이요."

금요일 아침 9시, 팀장님이 사무실 한가운데서 말했다.

"한여름 씨, 다음 달 1일자 전략기획실 발령. 축하해. 2주 인수인계. 서준 씨가 받아."

박수가 났다. 팀 막내가 "누나 8층 가면 우리 3번 폴더 누가 정리해요"라고 했고, 다들 웃었다. 한여름은 일어나서 꾸벅 인사했다. 회사 안 문법으로 "감사합니다"가 나올 차례였다.

"감사합니다. 3번 폴더는 서준 선배님께 인수인계하겠습니다. 정리 방식은 문서로 남기겠습니다. 결론부터 쓰시는 분이라 근거 폴더를 뒤로 두시는 습관이 있는데, 그 부분을 특히 신경 써서 작성하겠습니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반 박자.

네 문장이었다. 회사 안에서. 사무실 한가운데서. 열한 명 앞에서. 팀장님이 나를 봤고, 막내가 저 애를 봤고, 저 애는 반듯하게 서서 자기가 네 문장을 말했다는 걸 아는 얼굴로 앉았다.

"…한여름 씨 요즘 말이 길어졌네?" 팀장님이 말했다.

"네. 발령 나서요."

키보드 소리가 제 박자로 났다. 나는 3번 폴더를 열었다. 근거 폴더가 뒤에 있었다. 저 애 말이 맞았다. 그게 좀 분했다. 두 달 전 기차에서처럼.

회사 안 문법이, 8층 발령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 2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