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지의 방은 하나였다
20화. 2년 치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수첩은 목요일에 다시 나왔다.
회사 책상 왼쪽 모서리가 아니라, 회사 밖 10미터 가로등 아래서. 저 애가 가방에서 꺼내 들고 있었다. 나한테 내밀지는 않았다. 들고만 있었다.
"설명드리겠습니다. 이 수첩이요."
"응."
"2년 전 10월에 시작했습니다. 회사 자료실에서 제안서를 복사한 날이요. 처음엔 제안서 여백에 적었는데 여백이 모자라서 수첩을 샀습니다. 매일 한 줄입니다. 입사 전에는 제안서를 읽고 한 줄, 입사 후에는 선배님을 보고 한 줄. 총 2년 치입니다. 수첩은 이게 네 권째입니다."
네 권째. 나는 그 숫자를 받았다. 손바닥만 한 수첩 네 권. 2년 치 한 줄들. 저 애가 계산이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가 그거였다. 기록. 매일.
"…뭘 적는데. 한 줄에."
"관찰이요. 선배님이 결론부터 쓰신다는 것. 도표를 근거 자리에 못 놓으신다는 것. 커피는 두 잔 사시는 습관. 우산 살이 휜 것. 3초 세는 것. 그런 겁니다. 감정은 안 적습니다. 감정은 데이터가 아니라서요."
"감정은 안 적는데 가중치는 60이야?"
"…가중치는 관찰의 결과입니다. 감정이 아니라요."
저 애의 논리는 늘 이렇다. 앞뒤가 정확히 맞아떨어져서 어디서 반박해야 할지 모르게.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한 줄만 읽어 줄 수 있어? 네가 골라서."
한여름이 3초 침묵했다. 그리고 반 박자 늦게.
"…선배님이 고르십시오. 날짜로요."
나는 날짜를 골랐다. 두 달 전. 첫 출장 첫날.
저 애가 수첩을 넘겼다. 세 권째의 뒤쪽 어딘가. 그리고 결재 서류를 읽는 얼굴로, 결재 서류를 읽는 목소리로, 읽었다.
「704호. 침대에서 바닥까지 1미터 40. 선배님 숨소리 규칙적. 논 같음. 23시 12분에 잠드심. 나는 안 잠.」
읽고 나서 저 애는 수첩을 덮었다. 나는 가로등 아래서 그 한 줄을 다시 들었다. 머릿속에서. 논 같음. 저 애한테 논은 규칙적이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내 숨소리가 그거였다는 것이다. 그 밤에. 나는 안 잠.
"…그날 안 잤어?"
"네. 계산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새벽에 그 말이—"
"—잠꼬대가 아니었습니다. 깨어 있었으니까요. 처음부터 압니다. 들으라고 한 건지 아닌지는 그때 저도 몰랐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지금은?"
"들으셨으면 해서 한 겁니다. 안 들으셨으면 없던 걸로 하려고요. 둘 다 준비했습니다. 논 한 칸에 하나씩."
내 차례였다.
저 애는 수첩을 보여 줬다. 한 줄이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없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걸 그날 가로등 아래서 처음으로 말했다. 자백처럼.
"나는 안 적었어."
"…네?"
"너는 매일 한 줄 적었잖아. 나는 매일 서른 개 만들었어. 문장. 너한테 할 말. 출장 첫날부터. 새벽에 그 말 듣고 서른 개, 서울역에서 서른 개, 특이사항 란 보고 서른 개. 매일. 근데 안 적었어. 적으면 너처럼 될까 봐."
한여름이 나를 봤다. 반 박자. 한 박자.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외워졌어. 안 적었는데. 2년 치는 아니고 두 달 치인데, 서른 개씩 60일이면 1800개야. 그중에 지금 남은 건 —"
"몇 개입니까."
"하나."
저 애의 입꼬리가 움직였다. 아주 작게. 그리고 저 애는 그걸 숨기려고 수첩을 가방에 넣었다. 서랍이 아니라 가방. 늘 그랬듯.
"…그 하나는 데이터입니까."
"아니. 결론이야."
"선배님은 결론부터 쓰시는 분이니까요."
"응. 근데 지금은 안 써. 네가 90이라고 했으니까. 100이 돼야 보고라며."
"…네. 그건 제가 만든 규칙입니다."
"그럼 개정해."
한여름이 3초 침묵했다. 가로등 아래서. 회사 밖 10미터에서. 그리고 저 애답게, 정확한 한 마디로.
"…검토하겠습니다."
규칙을 만든 사람이 규칙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저 애의 문법에서 그건 거의 승인이었다.
금요일 오후 4시, 팀장님이 한여름을 불렀다.
회의실 B가 아니라, 인사팀장과 함께, 6층 소회의실. 문이 닫혔다. 30분. 나는 3번 폴더를 정리하는 척하면서 소회의실 문을 봤다. 지켜보는 건 계산에 없는 항목인데, 이번엔 저 애가 아니라 문을 봤다. 문은 항목이 아니다.
4시 32분, 문이 열렸다. 저 애가 나왔다. 반듯한 등. 자리에 앉았다. 키보드 소리가 —
나지 않았다.
퇴근 시간까지 저 애는 키보드를 치지 않았다. 모니터만 봤다. 회사 안 문법으로도, 한 글자도.
회사 밖 10미터에서 저 애가 말했다. 반 박자 늦게, 딱 한 문장.
"전략기획실 발령 제안입니다. 다음 달 1일자로요."
— 21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