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끝, 사견 하나
1화. 공지와 사견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국문과 과방의 하루는 임건후의 공지로 끝난다.
"금요일 답사 집합 오전 9시, 학관 앞. 회비 미납 3명, 오늘까지. 축제 부스 신청서는 내가 냈고, 결과는 다음 주. — 이상 공지 끝."
과대표 2년 차의 공지는 군더더기가 없다. 다정한 반말, 기복 없는 평서문. 과 사람들이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고, 나도 노트북을 덮었다. 그때 같은 톤이 이어졌다.
"그리고 사견 하나."
고개를 들었다. 임건후가 나를 보고 있었다.
"너 오늘 안색이 어제보다 나쁘다. 밥 먹으러 가자, 지금. 메뉴는 네가 정해."
공지와 정확히 같은 박자였다. 회비 미납 3명과 내 안색이 같은 결재라인에 올라 있는 것 같은 톤. 과방에 남아 있던 동기 둘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쟤는 원래 다 챙기잖아, 하는 얼굴로.
문제는 그 '다'의 해상도다. 그걸 아는 사람은 이 과에서 나뿐이다.
임건후는 과 전체에게 다정하다. 이건 사실이다.
단톡방의 공지는 자상하고, 새내기의 수강 신청을 봐주고, 조모임에서 밥 못 먹은 사람을 귀신같이 안다. 국문과의 공공재. 2년 연속 과대표가 괜히 된 게 아니다.
그런데 나에 대해서만, 다정함의 화소 수가 다르다.
남들에게는 "밥 먹었어?"다. 나에게는 "어제 그 국물 못 먹는 거, 아직이지? 이 집은 국물 안 나와"다. 남들에게는 "시험 잘 봐"다. 나에게는 "너 필기가 3주 전 것부터 비어 있던데, 내 거 복사해 놨어. 사물함 두 번째 칸"이다.
내가 국물을 못 먹게 된 건 작년 겨울 얘기고, 그걸 아는 동기는 없다. 말한 적이 없으니까. 다만 개강 첫 주 회식에서 내가 국그릇을 세 번 밀어낸 걸 — 그 시끄러운 자리에서 — 본 사람이 하나 있었을 뿐이다. 그는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정해져 있다.
"과대표니까."
과대표는 그런 직책이 아니라고 정정해 주고 싶은데, 정정할 타이밍은 늘 그가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면서 사라진다.
그날 밥집에서, 나는 결국 물었다. 물을 수밖에 없었다.
"임건후. 너 왜 나한테만 이래?"
그는 수저를 놓지도, 뜸을 들이지도 않았다. 공지 읽는 얼굴 그대로 대답했다.
"예뻐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
내 젓가락이 반찬 위에서 멈췄다. 그는 이어서, 정말로 같은 톤으로 말했다.
"공지 아니고 사견이야."
"…야, 그런 말을 그렇게 —"
"다음 안건." 그가 물을 따라 주며 말했다. "목요일 휴강이야. 뭐 할 거야?"
이게 이 남자의 문제다. 남들이 고백으로나 쓸 문장을 공지 톤으로 말한다. 부끄러움이 결여된 게 아니라 — 아니, 결여된 것 같다. 본인은 '사실을 말했는데?'라는 얼굴을 하고 있고, 무너지는 건 항상 듣는 쪽이다. 나는 그날 국이 나오지 않는 그 집에서,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 주 화요일, 과방에서 그 노트를 봤다.
임건후가 조교실에 불려 간 사이, 책장에 기대 세워져 있던 그의 파일 더미가 미끄러졌다. 주우려는데 사이에서 얇은 노트가 한 권 떨어져 펼쳐졌다.
표지에 매직으로 반듯하게. 「과대표 프로토콜.」
소문은 들었다. 임건후에게는 원칙 노트가 있다더라. 회비 관리든 조 편성이든 그 노트대로 한다더라. 펼쳐진 페이지는 목차였다. 1. 회계는 매주 공개한다. 2. 공지는 두 번 한다. 3. 밥 못 먹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목차 아래쪽, 다른 펜으로 덧붙인 한 줄에서 나는 멈췄다.
「3월 14일 이후, 개인 항목 신설.」
3월 14일.
날짜에 걸리는 게 있었다. 나는 폰 달력을 열어 확인했고, 확인하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3월 14일은, 복학한 내가 이 과방에 처음 온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