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규정은 없습니다
1화. 퇴근 10분 전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조부가 남긴 것은 세 가지였다. 60년 된 문구회사, 갚을 만한 부채, 그리고 차우빈.
마지막 항목이 유산 목록에 있는 건 아니었지만, 취임 첫날 저녁 6시 50분 — 퇴근 10분 전 — 대표실 문이 노크도 없이 열렸을 때, 나는 직감했다. 저 남자도 상속분이구나. 거부권 없는.
"퇴근 전에 10분만." 비서실장 차우빈은 서류 뭉치를 들고 있었다. "오늘 하신 실수부터 정리하겠습니다."
"…실수요?"
"결재 서류 3건 중 2건 오탈자. 거래처 대표 호칭 오류 1건. 오전 회의에서 생산팀장 성함을 두 번 잘못 부르셨습니다." 그는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점심을 거르셨더군요. 하나 추가하겠습니다. 실수 4건."
"점심이 왜 실수예요?"
"대표의 컨디션은 회사 자산입니다. 자산 관리 소홀은 실수입니다." 그가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내일 정정 동선은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상입니다."
문이 닫혔다. 안경 너머로 사람을 채점하는 눈. 8년간 조부를 모셨다는 남자는, 새 대표가 기준 미달이라는 사실을 숨길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서류를 넘기다가 나는 멈췄다. 결재 서류 사이에 끼워진 것들. 편의점 도시락 영수증 한 장 — 시각은 오후 1시 12분, 품목은 내가 좋아하는 제육 도시락. 그리고 접힌 우산 하나가 서류함 옆에 세워져 있었다. 오늘 저녁부터 비 예보였다.
인터폰을 눌렀다. "차 실장님. 이 우산이랑 도시락은 뭐죠?"
수화기 너머의 대답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규정입니다."
온빛문구는 조부가 1966년에 세운 회사다. 연필과 노트로 시작해 지금은 다이어리와 만년필로 버티는, 오래됐다는 말이 칭찬도 걱정도 되는 회사.
나는 이 회사를 물려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조부의 장례가 끝나고 2주 만에 대표 자리에 앉았고, 임원들의 눈에서 같은 문장을 읽었다. 얼마나 버티나 보자.
차우빈의 눈은 조금 달랐다. 얼마나 버티나 보자, 가 아니라 — 어디까지 가르쳐야 하나, 에 가까웠다. 어느 쪽이 더 자존심 상하는지는 아직 결론을 못 냈다.
취임 2주 차, 첫 거래처 미팅에서 사달이 났다.
지업사 대표는 조부와 30년을 거래한 사람이었고, 명함을 받는 손끝부터 나를 깎아내렸다.
"회장님 손주면 뭐, 낙하산도 이런 금수저 낙하산이 없지. 요즘 애들이 종이를 알기나 하나."
웃어넘기려던 참이었다. 옆에서 서류 넘기는 소리가 멈췄다.
"김 대표님." 차우빈이 말했다. 처음 듣는 온도의 목소리였다. "당사 대표에 대한 평가는 제 업무입니다. 월권하지 마시죠."
"뭐, 뭐요?"
"참고로 평가 기준은 선대 회장님 기준을 적용 중입니다. 그 기준이라면 —" 그는 서류를 덮었다. "지난 분기 귀사의 납품 지연 3건도 같은 기준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본론으로 가시죠."
지업사 대표는 본론으로 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물었다.
"아까, 고마웠어요."
"업무였습니다."
"실장님 기준으로 저는 몇 점인데요?"
"기준 미달이십니다." 그는 전방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오늘까지는. 내일 기준은 오늘 밤에 다시 정하겠습니다. 그게 제 업무라서요."
이상한 남자였다. 나를 매일 낙제시키는데, 남이 나를 깎는 건 1초도 못 견딘다.
그날 저녁, 그가 브리핑을 마치고 나간 자리에 수첩 크기의 다이어리가 떨어져 있었다.
주우려는데 갈피에서 종이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오래된 메모지. 만년필 글씨. 나는 그 필체를 안다. 조부의 것이다.
「우빈 군. 내 손주를 부탁하네. 단,」
거기서 접혀 있었다. 접힌 선이 하얗게 닳아 있었다. 수백 번은 접었다 폈을 자국이었다.
단, 뭐지.
문이 열렸다. "대표님, 두고 간 물건이 —" 차우빈의 시선이 내 손의 다이어리에 닿았고, 처음으로, 그의 표정이 흔들리는 걸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