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10분 전의 빵집
25화. 하람이 엄마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그 총각이 유진 씨 얘기를 하도 해서."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하람 씨와 같은 데가 있었다. 문장 끝이 올라가는 것. 나는 회사 앞 횡단보도에 서서 그 목소리를 들었다.
"…번호는 어떻게."
"하람이 전화기에 '유진 씨'라고 돼 있길래. 미안해요, 내가 좀 급해서. 지금 올 수 있어요? 9시 50분 말고 지금."
이 사람의 어머니도 9시 50분을 알고 있었다.
7시 20분에 건너편 가게 문을 밀었다.
계산대 앞에 하람 씨가 있었고, 창 앞 의자에 어머니가 있었다. 내 의자였다. 어머니가 거기 앉아서 김치 통 두 개를 발밑에 두고 나를 봤다.
"오셨다."
하람 씨가 말했다. 그런데 오늘의 오셨다는 조금 흔들렸다. 어머니가 내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흔들림이었다.
"유진 씨죠? 앉아요. 아니, 여기가 유진 씨 자리라며. 내가 비켜야지."
어머니가 일어났다. 나는 손을 저었다.
"앉아 계세요. 저는 서 있어도—"
"아니, 앉아요."
부산 억양의 앉아요는 명령이었다. 나는 앉았다. 0초였다. 어머니 앞에서 큰언니의 0초가 작동했다. 받는 자리에 앉는 데 0초가 걸린 것은 처음이었다. 어머니가 오븐 앞 의자를 끌고 와서 내 옆에 앉았다.
"얘가요."
어머니가 하람 씨를 턱으로 가리켰다.
"전화를 안 해요. 제과 학교 때부터. 잘 지내냐고 하면 '저야 뭐, 빵 구웠죠' 이래. 5년을 그 말만 들었어요."
"…저도 들었어요. 그 말."
"근데 지난달에 전화가 왔어요. 김치 냉장고 샀다고. 그게 5년 만에 자기 얘기였어요. 냉장고 샀다는 게."
나는 하람 씨를 봤다. 계산대 뒤에서 이 사람이 손을 어디 둘지 모르고 있었다. 주머니. 주머니에 손이 들어갔다.
"그래서 왔어요. 냉장고 보러. 근데 와 보니까 냉장고가 아니고 사람이더라고. 얘 얼굴이 5년 만에 처음 보는 얼굴이에요."
어머니가 김치 통을 열었다.
"유진 씨가 김치찌개 끓여 줬다면서요."
"…네. 한 번이요."
"그거 얘가 한 달을 얘기했어요. 전화로. 찌개 얘기를. 나는 30년을 끓였는데 한 번도 얘기 안 하더니."
"어머니."
하람 씨가 처음으로 말했다. 계산대 뒤에서.
"…그건 항목이 달라요."
"뭔 항목."
"어머니 찌개는 원래 있는 거고, 유진 씨 찌개는 없던 데 생긴 거예요. 없던 데 생기면 하나여도 찬 거예요."
어머니가 아들을 봤다. 이해 못 하는 얼굴이었다. 부장님이 골목 문법을 못 알아듣던 얼굴과 같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부장님과 달리 알아듣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유진 씨가 없던 데 생긴 거네."
"…네."
하람 씨가 빨개졌다. 정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한테도.
어머니가 나를 봤다.
"유진 씨는 몇 살이에요?"
"서른둘이요."
"얘보다 여덟 살 많네."
"…네."
"잘됐네."
나는 잘됐네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랐다. 1초. 2초. 3초. 어머니가 웃었다.
"3초 걸리네. 얘랑 똑같이."
하람 씨가 계산대 뒤에서 소리를 냈다. 웃음인지 다른 것인지 모를 소리였다.
"어머니, 그거 어떻게—"
"내가 니 엄마다. 니가 뭘 받으면 3초 서 있는 거 내가 24년을 봤는데."
9시 50분이 됐다. 어머니는 가게 이 층으로 올라갔다. 하람 씨가 사는 곳. "저희 시간이라며. 그건 지켜 줘야지" 하면서. 이 사람의 어머니도 결정권을 두는 법을 알았다. 어디서 배운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오셨다."
하람 씨가 봉투를 들고 다시 말했다. 7시 20분에 한 번 했는데.
"아까 했잖아요."
"아까는 흔들렸어요. 다시 할게요."
"…네."
봉투를 받았다. 창 앞 의자 두 개. 어머니가 앉았던 자리와 내 자리.
"어머니가요."
하람 씨가 오븐 앞 의자를 끌고 와서 앉았다.
"제 얼굴이 5년 만이래요. 근데 저는 몰랐어요. 제 얼굴이 어땠는지. 유진 씨 얼굴만 봤으니까."
"이제 봐요. 창이 커서 비쳐요."
하람 씨가 창을 봤다. 밤이라 창이 거울이었다. 거기 두 사람이 비쳤다.
"…처음 봤어요. 이렇게 앉아 있는 거."
— 26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