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담
홈

마감 10분 전의 빵집

20화. 판 짜기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12월 첫째 주에 나는 골목의 목록을 다시 꺼냈다.

이번엔 받은 것의 목록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것의 목록이었다. 꽃집 사장님: 트럭 있음. 죽집 아저씨: 허리 나았음, 힘 씀. 세탁소: 강아지 산책 대신 사람 필요. 편의점 야간 알바: 새벽에 시간 있음. 후배 셋: 토요일에 온다고 함. 나: 판 짜기.

큰언니의 능력이었다. 5년 동안 회식 자리 짜고, 워크숍 동선 짜고, 후배 이사 짜던 것. 그것을 좋은 쪽으로 쓰는 것이 처음이었다. 아니, 늘 좋은 쪽으로 썼다. 다만 나를 위한 쪽으로 쓴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를 위한 것 같았다. 받는 법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판을 짜는 동안, 나도 뭔가를 받고 있었다.

밤 9시 55분.

"오셨다."

"이사요. 12월 16일 토요일. 아침 7시."

하람 씨가 봉투를 든 채 나를 봤다.

"…네?"

"꽃집 트럭, 죽집 아저씨, 세탁소 사장님, 편의점 알바생, 우리 후배 셋. 8명이에요. 오븐은 전문 업체 불렀어요. 견적 받아 놨어요. 나머지는 8명이 해요."

하람 씨의 손이 봉투 모양으로 남았다. 봉투는 아직 자기 손에 있는데.

"…이거 제 일인데요."

"네. 하람 씨 일이에요. 근데 이건 목록 항목이 아니에요. 판 짜기 항목이에요. 제 항목."

"항목이 왜 이렇게—"

"정확해야 하니까요. 뭘 주는 사람인지."

그 사람의 문장이었다. 그대로 돌려줬다.

1초. 2초. 3초.

"…고마워요."

"3초. 성공."

12월 16일 토요일 아침 7시.

골목이 시끄러웠다. 꽃집 트럭이 가게 앞에 섰고, 죽집 아저씨가 선반을 떼고, 세탁소 사장님이 진열대를 닦고, 편의점 알바생이 새벽부터 와서 포장을 하고 있었다. 후배 셋이 8시에 도착했다. 막내가 목장갑을 끼고 왔다.

"선배, 저희 뭐 해요?"

"너희는 저쪽. 건너편 가게. 창 닦아."

"창이요?"

"거기 창이 커. 그게 제일 중요해."

하람 씨는 그날 종일 받는 쪽에 서 있었다.

이 사람이 한 것은 지시가 아니었다. 오븐 업체한테 오븐을 어디에 놓을지 말한 것, 그것 하나였다. 나머지는 8명이 했다. 하람 씨가 뭘 들려고 하면 죽집 아저씨가 "너는 가만있어" 했고, 뭘 닦으려고 하면 세탁소 사장님이 "저리 가" 했다.

손이 먼저인 사람이 손을 못 쓰는 하루였다. 나는 그 사람이 골목 한가운데 서서 손을 어디 둘지 모르는 것을 봤다. 무릎이 아니라, 주머니.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 있었다. 원룸 식탁 때보다 나아진 자세였다.

점심에 꽃집 사장님이 김밥을 돌렸다.

"하람아, 먹어."

하람 씨가 김밥을 받았다. 1초. 2초.

"…고마워요."

2초였다. 나는 세고 있었다. 꽃집 사장님은 몰랐다. 그 2초가 뭔지. 2년 동안 하나 반을 받던 사람이 오늘 하루에 여덟 명한테 받고 있었다.

"선배."

막내가 옆에 와서 앉았다. 김밥을 들고.

"저 사람 되게 어색해해요. 받는 거."

"…응."

"선배랑 똑같아요."

나는 막내를 봤다. 이 아이는 정확했다. 회사 밖에서까지.

저녁 6시. 옛 가게가 비었다.

진열대도, 선반도, 오븐도 없었다. 벽에 못 자국. 바닥에 오븐 자리의 네모난 자국. 그리고 유리문의 안내문. '12월 15일까지 여기서 영업합니다. 그다음은 —'

하람 씨가 그 앞에 섰다. 펜을 꺼냈다. 그리고 썼다.

'그다음은 건너편입니다. 같은 이름, 같은 시간, 창은 두 배.'

"…다 썼네요."

"네. 어제까지 못 썼어요. 오늘 8명이 오니까 써졌어요."

빈 가게 안에서 하람 씨가 나를 봤다. 밀가루 없는 손이었다. 오늘 하루 종일 밀가루가 없었던 손.

"내일이요. 마감이 없어요. 여기 이제 마감 시간이 없어요."

"…그러네요."

"근데 10시에 여기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유진 씨도—"

"올게요. 9시 50분에."

— 21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