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은 닫고 주무세요
2화. 온에어에 섞이는 단어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사연을 다시 보내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보내지 않으면 끝나는 거였다. 목소리 뒤의 사람과 문체 뒤의 사람은 각자의 뒤로 돌아가면 된다. 그런데 새벽 2시마다 클로징이 왔다. "객석 맨 뒤에 계셨던 분, 오늘은 일찍 주무세요." "맨 뒤에 계셨던 분, 비 옵니다. 우산이요." 방송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방송이 아니라.
여덟째 날, 나는 사연을 썼다. 회사 앞 골목 이름을 썼다. 매일 지나는 골목의 붕어빵 트럭 얘기. 별거 아닌 사연이었다.
이틀 뒤 읽혔다.
"빗소리 님. 붕어빵은 팥이죠, 역시. …그런데 그 골목, 밤에는 가로등이 하나 나가 있더라고요. 조심해서 다니세요."
가로등 얘기는 사연에 없었다 — 아니, 있었다. 넉 달 전 사연 구석에 한 줄. 나도 잊고 있던 한 줄을, 그녀는 넉 달을 가지고 있다가 꺼냈다. 그녀가 아는 건 내가 쓴 문장뿐이다. 그 문장을 전부 기억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식이었다. 온에어 문장에 단어가 하나씩 섞였다.
고장 난 우산 얘기를 보내면 "빗소리 님, 우산 살이 세 번째 것부터 휘던데요"가 왔다. 세 번째 살. 나는 그 우산을 공개방송 날 들고 갔었다. 스무 걸음 거리에서 본 것을 그녀는 기억하고, 방송 문장 안에 몰래 넣었다. 수십만 명은 그냥 우산 얘기로 들을 문장을, 나는 다른 것으로 들었다.
온에어의 그녀는 완결된 문장만 말한다. 그러니까 이건 그녀가 나에게 완결된 무언가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채널이었다. 대본이 있고, 마침표가 있고, 방송 톤이라는 안전한 포장이 있는 채널.
오프에어로 만난 건 방송국 로비에서였다.
사연 채택 청취자에게 주는 굿즈를 직접 받으러 오라는 문자가 왔고 — 그건 핑계였고, 핑계라는 걸 둘 다 알았다 — 나는 퇴근길에 방송국 로비로 갔다. 그녀가 굿즈 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검은 니트, 헤드폰은 목에.
"…오셨네요."
"네."
"저기. 할 말이 있는데, 그게…"
문장이 끊겼다. 로비의 소음 속에서 그녀는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말줄임표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런 형태일 것이다. 나는 기다렸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방송 잘 듣고 있어요." 내가 말했다. 그녀의 문장을 도와주려고.
"아, 네. 감사…" 또 끊겼다. 그녀가 눈을 감았다 떴다. "할 말이, 그게. 사연 말고—"
"…사연 말고, 직접 들으라고요?"
내가 그 뒤를 말했다. 끊긴 문장의 끝을 대신 놓았다. 대본 없이, 마이크 없이, 그녀가 놓지 못하는 마침표를.
그녀가 나를 봤다. 오래. 그리고 대답 대신 —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아니었다. 그녀가 말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때 이해했다. 온에어에서만 말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말 대신 할 수 있는 걸 했다. 목에 걸고 있던 헤드폰을 벗어서, 내 목에 걸어 줬다. 헤드폰이 아직 따뜻했다.
"…이거, 제 거예요." 그게 그날 그녀가 완성한 유일한 문장이었다. 세 어절짜리.
편성 개편 공지는 방송국 홈페이지에 조용히 올라왔다.
「'새벽 2시의 사연' 종영 안내. 남은 방송 3회.」
나는 헤드폰을 목에 건 채 그 공지를 읽었다.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개편이란 원래 그렇다.
3회. 그녀가 완결된 문장을 말할 수 있는 채널이 3번 남았다. 온에어가 사라지면, 대본이 사라지면, 방송 톤이 사라지면 — 그녀는 어디서 문장을 끝낼 수 있는가.
그날 밤 새벽 2시 클로징.
"맨 뒤에 계셨던 분. …오늘은, 창문 얘기 말고요."
거기서 끊겼다. 온에어에서, 처음으로.
시그널이 문장의 빈자리를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