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담
홈

마감 후의 사람

1화. 두 잔짜리 얼굴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보고서가 세 번째 반려된 날이었다.

밤 11시 반, 막차 지하철을 눈앞에서 놓쳤다. 다음 차는 18분 뒤였고, 나는 역으로 내려가는 대신 골목을 걸었다. 어디로 가는 걸음이 아니라 어디로도 가기 싫은 걸음이었다.

골목 끝집에 백열등 간판이 켜져 있었다.

달무리.

여섯 석짜리 카운터가 전부인 가게였다. 문을 열자 종이 한 번 울렸고, 카운터 안쪽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3초쯤 보더니 말했다.

"어서 와. 오늘은 얼굴이 두 잔짜리네."

"…네?"

"아, 처음이구나?" 그녀가 웃으며 잔을 꺼냈다. "그럼 정정. 오늘은, 얼굴이 두 잔짜리인 첫 손님."

첫 잔이 나왔다. 뭘 마시겠냐고 묻지 않았는데 나온 잔이었다. 도수가 낮고 부드러웠다. 세 번 반려된 사람에게 독한 것부터 주지 않는 배려라는 것을, 나는 두 번째 방문쯤에 알아챘다.

그 사람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무슨 일 있었냐고, 회사가 힘드냐고, 몇 살이냐고, 아무것도. 대신 내가 먼저 말하게 됐다. 이상한 일이었다. 물어보는 사람 앞에서는 나오지 않던 말들이, 묻지 않는 사람 앞에서 술술 나왔다.

"부장이 세 번을 까는데, 셋 다 이유가 달라요."

"그랬구나."

"세 번째 이유가 뭔지 아세요? 폰트요. 폰트."

"그랬구나." 잔이 조용히 채워졌다. "폰트는 죄가 없는데."

조언은 없었다. 부장을 욕해 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루가 소화됐다.

몇 주 만에 나는 단골이 됐다.

가게에는 요일별로 단골들이 있었다. 화요일의 대리운전 기사님, 목요일의 편의점 점장님, 금요일의 나. 하진 누나 — 어느새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 는 모두의 하루를 다 기억했다. 기사님 따님의 수능 날짜, 점장님 허리 시술 경과, 그리고 내 보고서가 몇 번째 반려인지.

조언은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랬구나"와 리필. 그게 전부인데, 여섯 석은 밤마다 찼다.

이 가게의 비결은 술이 아니었다. 카운터 너머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 부장 얘기, 벌써 세 번째다?"

금요일 밤, 누나가 잔을 닦으며 말했다. 나는 뜨끔했다.

"…죄송. 지겹죠."

"아니, 해. 네 번째도 들어줄게." 누나가 씩 웃었다. "대신 이번엔 결말까지 듣는다. 맨날 부장이 까는 데서 끝나잖아. 그래서 보고서는 통과했어, 안 했어?"

"…오늘 통과했어요."

"거봐. 결말이 제일 재밌네."

놀림과 수용이 한 문장에 들어 있는 화법이었다. 당한 쪽은 웃게 되고, 웃고 나면 어쩐지 진 기분이 드는.

자정 반, 마감 시간이 됐다.

기사님이 일어났고, 점장님이 계산을 했고, 누나가 잔들을 거둬 갔다. 행주가 카운터를 한 바퀴 돌았다.

내 잔만 남아 있었다.

"…마감인데요?"

"응."

누나는 마른 잔들을 선반에 올리며 대답했다.

"넌 반 잔 남았잖아."

시계를 봤다. 막차는 이미 없는 시간이었다. 반 잔이 비워지는 속도만큼만, 마감이 미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