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에 없던 회의가 생겼어
30화. 오늘 그 셔츠 좋다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아침 엘리베이터.
정 대리님이 먼저 타 있었다. 하봄이 탔고, 내가 탔다. 옥상의 셔츠. 문이 닫혔다.
2년 전 이 자리에서 하봄이 말했다. 오늘 그 셔츠 좋다. 어제도 좋았는데 오늘 게 더 좋아. 이유는 안 알려줌. 나는 그걸 '쟤 원래 저래' 폴더에 넣었고, 인사팀 대리님은 웃음을 참았다.
오늘은 하봄이 말하지 않았다. 하봄은 층수 표시를 안 보고, 도망갈 데를 안 찾고, 나를 봤다. 던질 게 있는데 안 던지는 얼굴. 기다리는 얼굴.
그래서 내가 했다. 2년 만에, 방향을 바꿔서.
"오늘 그 셔츠 좋다."
하봄이 눈을 크게 떴다.
"어제도 좋았는데 오늘 게 더 좋아."
"…어제랑 같은 셔츠인데."
"그러니까."
정 대리님이 웃음을 참는 소리를 냈다. 2년 전 그 소리였다.
"이유는 안 알려줌."
99번. 나는 속으로 셌다. 하봄도 셌을 것이다. 4층. 5층. 6층. 하봄의 귀가 빨개지는 것을 층수마다 봤다. 그런데 하봄은 도망가지 않았다. 벽시계는 없었고, 있어도 상관없었다.
"…그거 내 대사인데."
"2년 동안 네 거였으니까 이제 내 거 한 번은 해도 되잖아."
"…그러네."
12층. 문이 열렸다. 하봄이 먼저 내렸다. 그리고 문 앞에서 돌아봤다.
"…탕비실. 10시 반."
10시 반 탕비실.
2년 전 이 자리에서 나는 얼떨결에 물었다. 너 나 좋아하냐. 하봄은 벽시계를 보고 3시에 없던 회의가 생겼다고 했고, 문 앞에서 돌아보며 내일 다시 물어보라고 했다.
하봄이 머그컵을 들고 있었다. 커피 두 잔. 하나가 내 쪽으로 왔다.
"내가 마시고 싶어서 산 거임."
"…손이 미끄러졌네?"
"아니. 이번엔 안 미끄러졌어. 그냥 준 거야."
포장이 하나 벗겨졌다. 2년 동안 커피 앞에 붙어 있던 포장. 하봄이 그걸 벗기고 나를 봤다.
"물어봐."
"…뭘."
"2년 전에 여기서 물어본 거. 다시. 내일 다시 물어보라고 했잖아. 그 내일이 오늘이야."
나는 머그컵을 들었다. 손이 안 떨렸다. 99번 동안 생긴 근육.
"하봄아."
"…응."
"너 나 좋아하냐?"
하봄이 나를 봤다. 벽시계가 있었다. 10시 32분이었다. 하봄이 벽시계를 봤다.
"…"
그리고 벽시계에서 눈을 뗐다.
"3시에 회의 있어."
"…"
"진짜로. 부산 건. 팀장님이랑 인수인계. 없던 회의 아니고 있는 회의야."
하봄이 머그컵을 내려놨다.
"그러니까 대답은 회의 끝나고 할게. 3시 반. 옥상. 도망치는 거 아니야. 진짜 회의라서 그래. 2년 만에 처음으로 진짜 회의 때문에 미루는 거야."
"…알았어."
"그리고 그거 —"
하봄이 문 앞에서 돌아봤다. 귀가 빨갰다. 2년 전 그대로.
"— 옥상에서 백 번째 해. 네가 정한다며. 내가 안 도망칠 때. 3시 반에 나 안 도망쳐. 그러니까 거기서 해."
3시. 나는 개발팀 자리에서 시계를 봤다.
하봄이 노 팀장님 방으로 들어갔다. 진짜 회의. 없던 회의가 2년 만에 있는 회의가 됐다. 3시 25분에 문이 열렸다. 하봄이 나왔다. 나를 안 봤다. 대신 사무실을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로 갔다. 옥상 방향.
나는 5분 뒤에 따라갔다.
옥상은 바람이 좋았다.
하봄은 난간에 있었다. 캔커피 두 개. 데미소다 옆의 블랙. 하나가 내 쪽으로 왔다. 3시 반이었고, 해가 있었고, 야경은 없었다. 백한 번째의 밤이 아니라 낮이었다.
"회의 끝났어."
"응."
"인수인계 서류 열두 장. 다음 달 첫째 주 월요일 출발. 격주 금요일 서울."
"응."
"…그거 다 했으니까."
하봄이 캔을 난간에 놓았다. 내가 백한 번째를 하던 밤에 놓았던 자리. 그리고 나를 봤다. 정면으로. 벽시계도, 회의실도, 산책로도 없는 얼굴로.
"해. 백 번째."
나는 캔을 안 땄다. 들고만 있었다.
"…나 안 해."
"뭐?"
"백 번째. 안 해. 아니, 못 해."
하봄의 얼굴이 이상해졌다.
"…왜."
"네가 먼저 해야 돼서."
"…"
"2년 동안 너 백 번 했잖아. 근데 그거 다 포장이었잖아. 셔츠, 커피, 아직. 포장 없는 건 석 달 동안 세 번. 고마워, 고마워, 가 나도 갈게. 그런데 그 문장은 한 번도 안 했어. 백 번 중에 한 번도."
"…"
"내가 옥상에서 한 그 문장. 너는 아직 안 했어. 백 번을 했는데 그건 안 했어. 그러니까 내 백 번째는 — 네가 그거 하고 나서 할 거야. 백한 번째 말고, 네 첫 번째 다음에."
바람이 지나갔다. 석 달 전이랑, 2년 전이랑 같은 바람.
하봄이 오래 나를 봤다. 던지는 얼굴이 올라왔다. 그리고 내려갔다. 도망치는 얼굴이 올라왔다. 내려갔다. 그리고 남은 것은, 2년 동안 한 번도 안 본 얼굴이었다. 포장을 벗기는 얼굴. 백 번을 던진 사람이 백 번 동안 한 번도 안 한 것을 하려는 얼굴.
"…알았어."
낮게.
"백한 번째 말고. 포장 없는 첫 번째 할게."
하봄이 캔을 내려놓았다. 난간에서 등을 뗐다. 세 걸음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한 걸음이었다.
"태오야."
이름이었다. 2년 동안 하봄은 나를 야, 태오, 태오 씨, 로 불렀다. 태오야, 는 없었다.
"나—"
— 시즌 1 끝. (시즌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