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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지의 방은 하나였다

2화. 소등 후의 문장들

🤖 이 작품은 AI로 생성되었으며 사람이 검수·수정했습니다.

한여름은 호텔 메모지에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내가 캐리어를 문 옆에 어정쩡하게 세워두는 사이, 저 애는 책상 앞에 반듯하게 앉아 볼펜을 움직였다. 사각. 사각. 이윽고 메모지가 내 앞에 내밀어졌다. 방 배치도였다. 침대, 창문, 옷장, 그리고 방을 정확히 반으로 가르는 점선 하나. "왼쪽이 접니다. 오른쪽이 선배님입니다. 화장실은 공용 구역입니다." "……회의실 예약하는 것 같다?" "비슷합니다. 공간과 시간을 배분하는 일입니다." 한여름은 볼펜 끝으로 메모지 하단을 가리켰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3:00 소등」. "형광등은 23시에 끕니다. 회사 규정에는 없지만 제가 정했습니다." "침대는? 그건 배분 안 해?" "가위바위보 하시죠. 공정한 방법입니다." 나는 이겼다. 주먹을 낸 한여름이 내 보자기를 3초쯤 내려다봤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패배를 계산하는 얼굴이었다. "침대는 선배님 겁니다." "아니, 네가 써. 나는 바닥이 편해." "이긴 분이 침대입니다. 규칙입니다." "선배가 후배를 바닥에 재웠다는 소문이 돌면 내 회사 생활이 끝나." "소문은 제가 내야 도는데, 저는 낼 계획이 없습니다." "그래도 안 돼." 한여름은 나를 잠시 바라봤다. 반 박자. 그리고 볼펜을 딸깍, 눌렀다. "그럼 규칙을 개정합니다. 침대는 제가 씁니다. 대신." 캐리어 옆, 옷장 문을 열더니 위 칸에서 이불 두 채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불 여분은 선배님 겁니다. 아까 두 장 추가해 뒀습니다." ……아까. 프런트에서. 내가 관자놀이를 짚고 팀장님 번호나 누르고 있을 때, 저 애가 직원한테 확인하던 게 이거였다. 이불 여분 있습니까. 수건은 몇 장입니까. 그러니까 한여름은 방문이 열리기도 전에, 이미 이 방의 밤을 다 설계해놓고 있었던 거다. 차가운 애가 아니라, 조용히 준비하는 애. 그 생각을 하는 내 얼굴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한여름은 이불을 한 번 더 반듯하게 펴고 자기 구역으로 돌아갔다. 샤워는 직급순이라고 했다. "회사는 직급 사회입니다"라는 알 수 없는 근거와 함께 내가 먼저 떠밀려 들어갔고, 나올 때는 세면대 앞에 수건이 각 잡혀 개어져 있었다. 교대하고 나서 TV를 틀었는데 채널을 반쯤 돌렸을 때 욕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16번이 낫습니다." "안 보이잖아, 너." "소리로 압니다." 16번은 다큐멘터리 채널이었다. 심해 생물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대체 뭘 근거로 이게 낫다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젖은 머리로 나온 한여름이 화면 앞에 반듯하게 앉아 "아귀입니다"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걸 보고 질문을 포기했다.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 캔을 하나 내밀자 저 애는 캔과 나를 번갈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안 마십니다. 내일 운전 안 하지만, 안 마십니다." "그 문장 앞뒤가 안 맞는 거 알지?" "압니다. 그래도 안 마십니다." 맥주는 나 혼자 마셨다. 반 캔쯤 마셨을 때, 한여름이 책상 앞에서 수첩을 펴는 게 보였다. 손바닥만 한 수첩이었다. 볼펜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사이로 규칙적으로 끼어들었다. "뭐 적어?" "내일 보충 실사 동선입니다. 오전에 창고 쪽을 다시 봐야 합니다. 점장님이 말한 회전율과 실제 재고 데이터가 2퍼센트 어긋납니다." "……그걸 지금 적는다고?" "지금 적어야 내일 안 적습니다." 말문이 막히는 논리였다. 나는 남은 맥주를 마시며 저 애의 등을 봤다. 반듯한 등이었다. 오늘 하루 종일 — 기차에서도, 매장에서도, 국밥집에서도 — 저 등은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 그게 문득 궁금해졌다. 저 애는 언제 흐트러지나. 23시가 됐고, 한여름은 예고대로 정확히 형광등을 껐다. 수첩을 덮는 소리, 침대에 눕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차례로 들렸다. 어둠. 에어컨 소리. 창밖으로 지나가는 차 소리가 가끔. 바닥은 생각보다 푹신했다. 이불이 두 채라서. 나는 천장을 보고 누워서, 오늘 하루가 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건지 복기하고 있었다. "주무십니까."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내려왔다. 나는 천장을 본 채로 대답했다. "아니. 너는 왜 안 자." "생각 정리 중입니다. 낮의 협상이요. 점장님이 동선 제안을 받아들인 게 논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붐벼 보인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는지." "둘 다 아니야? 장사하는 사람 마음을 정확히 읽었으니까." "……그건 논리로 분류해도 됩니까." "분류하지 말고 그냥 잘했다고 해두면 안 되냐." 정적. 이불 스치는 소리. 그리고. "낮에 점장님 말입니다." 어둠 속에서 한여름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동선 얘기, 사실 선배님 기획서에서 배운 겁니다." "……내 기획서?" "3년 전에 쓰신 리뉴얼 제안서요. 입사 지원할 때 회사를 조사하다가 봤습니다. 매장 동선을 고객 체감 기준으로 다시 그린 부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에 지원했습니다. 그 제안서가 이유의 40퍼센트쯤 됩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깜빡였다. 지금. 방금. 몇 문장이었지. 낮의 한여름이었으면 "선배님 기획서 참고했습니다"로 끝났을 얘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문장이 길다. 반 박자 늦던 대답이 제 박자로 온다. 얼굴이 안 보여서일까. 아니면 어둠은 저 애한테 논처럼 규칙적인 무언가일까. "40퍼센트면 나머지 60은 뭔데." "통근 거리 30, 연봉 20." "……10이 남는데." 잠깐의 정적. 이불 스치는 소리. "…그건 아직 계산 중입니다." 나는 그 10퍼센트에 대해 물어볼 뻔했다. 입술까지 나왔다. 그런데 왜인지 — 지금 물으면 저 문장들이 다시 짧아질 것 같아서, 나는 질문을 삼키고 대신 아무래도 좋은 얘기들을 이어갔다. 낮의 협상, 국밥, 아귀. 어둠 속에서 한여름은 꼬박꼬박 대답했다. 길게. 제 박자로. 이 애의 말이 길어지는 조건을, 이제 두 개 안다. 기획 얘기. 그리고 지금. 대화가 언제 끝났는지는 모르겠다. 에어컨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했고, 나는 어느 순간 의식의 경계에서 가라앉고 있었다. 잠과 생시 사이, 그 얇은 틈으로. "…선배님은, 진짜." 낮은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뒷말은 이불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게 잠꼬대인지, 들으라고 한 말인지, 아니면 내 꿈이 만든 문장인지 판별하지 못한 채로 잠에 잠겼고 — 아침 알람이 울릴 때까지, 그 문장의 뒷부분을 꿈속에서 30번쯤 이어 붙였다. 어느 것도 정답 같지 않았다. — 2화 끝. (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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